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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30. 2023

[D-93] 영광의 상처?

273번째 글

'영광의 상처'라는 표현이 있다. 어떤 목표나 신념을 향해서 가다가 입은 부상은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표현에는 허점이 있다. 바로 그 상처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처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상처가 없이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착각하게 된다. 사실 상처받지 않고도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고 부상을 당하지 않고도 잘 해낼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영광의 상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가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중요하지만,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상처를 입지 않고도 충분히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상처를 입었다면,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잠시 멈춰야 한다. 또 더 이상은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어떤 부상을 '영광의 상처'라고 인식하게 되면, 그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후로도 비슷한 상처를 계속해서 입어서 결국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밤을 새워서 공부했고 좋은 성적을 거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피로에 찌든 채로 시험 성적표를 받아보면서 지금 느끼는 이 피로는 좋은 성적을 위한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한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라면 이런 피로쯤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시험을 준비했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당연히 밤을 새우는 것쯤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사람은 다음 시험에도 똑같이 밤을 새워서 시험공부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 피곤한 눈을 비비며 밤새 책상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랑스레 떠벌릴 것이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운 끝에 시험에서 1등을 했다며 무용담처럼 상처를 꺼내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십 년 후 이 사람의 건강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과연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상태일까? 지속 가능한 상태일까? 이 사람을 보고 똑같이 따라한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어쩌면 우리는 '영광의 상처'라는 이름으로 우리 스스로를 학대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했다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그렇게 오랫동안 착각해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픔과 괴로움을 삭이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은 장려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게으르다거나 의지가 약하다고 비웃고 무시하면서 말이다. 사실 휴식을 취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이나 비슷한 상처가 또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과정도 정말 중요하고 필수적인데도, 우리는 그 부분의 가치를 너무 적게 이야기해 온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영광의 상처'보다는 '영광의 흉터'라고 말하고 싶다. 전자는 상처를 입은 그 행위에 집중하고 있지만 후자는 상처가 치유된 이후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랑스러워하고 싶은 것은 후자 쪽이다. 나는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대신 나는 그 상처를 입고 난 뒤에 그 상처를 잘 닦고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안정을 취했다는 것을, 그 결과 상처가 이렇게 잘 아물었다는 것을, 그래서 흉터는 남았을지언정 덧나거나 더 심한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이 경험에서 배워서 다음번에는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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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30일,

소파에 앉아서 가습기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Oleg Stepanov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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