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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Oct 01. 2023

[D-92] 잊히고 싶은 존재

274번째 글

오랜만에 메모장을 들여다보았다. 어떤 기록들을 볼 때는 아, 이런 일이 있었지, 이런 생각을 했었지, 같이 새록새록 옛날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고, 또 어떤 기록들을 볼 때는 무슨 맥락으로 이 단어들을 적어둔 것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의미조차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냥 쌓아두기만 한 메모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분명 잊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적어 두었을 텐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그대로 잊어버린 이야기들이 정말 많았다.


아마 내 기억도 비슷하게 돌아갈 것 같다. 기억해 둬야지, 하고 머릿속에 넣어두었다가 시간이 지나며 잊어버린 것들도 정말 많을 것이다. 어떤 기억은 알아둘 필요도 없는 정말 사소한 것인데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어떤 기억은 중요해서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도 금세 잊히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내 기억 속에서 잊힌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또 이런 식으로 세상에서 완전히 잊힌 사람들도 정말 많을 것이다.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보면, 저승에서의 삶은 이승에서 그 사람이 얼마나 기억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사람을 잊지 않고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저승에서도 호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이승에서 잊히게 되면 곧 저승에서마저 소멸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잊힌다는 것은 그렇게나 비극적인 일로 묘사된다. 하지만 과연 잊히는 일이 그렇게나 비극적인 일일까? 꼭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야만 의미 있는 삶일까?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어야만 행복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예전에 AI를 통해 고인의 생전 목소리를 복원하고 고인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잊힐 권리'와 '잊힐 행복'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당사자라면 나는 그렇게까지 기억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자연스럽게 잊히고 싶다. 잊히지 않고 기억되는 것도 행복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잊힐 수 있는 것도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나를 잊어가면서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때로는 아주 깔끔하게 잊히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죽으면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도 나의 죽음을 슬퍼하기는커녕 내가 살아있다가 죽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런 결말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죽은 이후에 나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것도 싫고,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죽음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거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다. 그 사람들이 만약 기억하고 싶다면 기억해도 좋고, 기억하면서 내 생각을 하는 것이 슬픔을 견디는 데에 더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도 좋고.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도 아닌 데다가 내 주변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할 때 나는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영영 잊히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긴 하다. 그렇게 내가 존재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없어지면서 깔끔하게 내 자취를 지우고 떠날 수 있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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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일,

소파에 앉아서 창 밖 바람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Lorenz Hoffman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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