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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Oct 05. 2023

[D-88] 나와 너는 다를 뿐

278번째 글

오늘은 뉴질랜드에 여행을 온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이제 슬슬 이 나라에 적응이 되어 가고 있다. 적응이 되는 부분은 하늘이 언제나 파랗고 날씨가 정말 좋다는 것, 풀밭이 정말 초록색이라는 것, 걷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다는 것, 창문을 열면 불어 들어오는 바람이 깨끗하고 청량한 느낌이라는 것 정도다. 그리고 적응이 아직 덜 된 부분은 어디에서나 스몰톡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숙소의 호스트와 마주칠 때는 물론이고 커피를 주문할 때나 마트에서 계산을 할 때까지.


이 ‘스몰톡’ 문화는 내게는 사실 조금 피곤하게 느껴진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인사를 주고받고 친근하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게 낯선 나라에서 다른 언어로 진행된다는 점이 피로도를 높인다. 낯선 나라에 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본적으로 약간의 피로가 쌓이게 된다. 서로 다른 문화와 서로 다른 사회적 약속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이니까. 신경 써야 하는 것도 많고 알아봐야 하는 것도 많고 늘 바짝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피로감까지 더해지니 약간 지치는 듯한 느낌이다.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나와 이곳이 문화적으로 달라서 생기는 피곤함이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달라서 피곤하다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편견, 배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가 피곤한 이유를 나와 다른 상대방에게서 찾으며 책임을 전가하고 혐오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까지는 가지 않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서로 다른 것은 사실이고 피로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느끼고 이해하는 것과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내가 느끼는 이 피로와 그 원인이 또 다른 부정적 감정을 촉발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혐오와 배척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내 정신 건강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미워하는 일은 결코 내게 좋은 감정적, 정서적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것으로부터 피곤함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피곤한 것과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이 스트레스와 관련된 부분은 내가 어느 정도 선택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다. 그냥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수 있다. 다른 건 다른 거고, 피곤한 건 그냥 피곤한 거라고 생각하고 놔두면 된다. 어차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계속 피곤하다고 되뇌어 봐야 별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너와 나는 다르고, 같아질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결심. 너와 나의 차이는 그 다르다는 것뿐이라는 이해. 그 결심을 통해서 나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수 있다. 또 크게 보면 그렇게 개인이 스트레스를 적게 받음으로써 이 사회를 좀먹는 혐오와 편견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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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5일,

뉴질랜드 카페에 앉아서 음악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Taylor Kise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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