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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Oct 07. 2023

[D-86] 언제 또 해 보겠어?

280번째 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려고 뉴질랜드로 떠나왔건만, 이 여행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행군이 되어 가고 있다. 나는 체력이 약한 편이고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기 때문에 최근에는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현지의 분위기를 즐기며 편안하게 머무르는 여행을 해 왔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는 하루 종일 밖으로 나돌아 다니고 있다. 일단 안에만 있기엔 날씨가 너무 좋다. 이 햇빛, 이 공기, 이 날씨를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쇼핑이나 전시 관람과 같이 실내에서 하는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최대한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진다. 그냥 숙소 앞을 산책하는 것이어도 좋으니, 되도록이면 밖에 나가 거닐고 싶다. 그러다 보니 체력 소모가 좀 크다. 게다가 뉴질랜드 자체가 자연을 감상하거나 트래킹을 하거나 야외 스포츠를 즐기는 등 밖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서 기본적으로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도시와 도시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동 시간이 길다 보니 차를 오래 타야 하는 것도 체력 소모에 한몫하는 것 같고. 하나라도 더 보려고 전전긍긍한다거나 컨디션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해서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 보고, 볼 수 있는 건 웬만해선 빼놓지 않고 보려고 노력 중이다.

나를 이렇게 계속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동기는 내가 뉴질랜드에 다시 오게 될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다. 언젠가 다시 오고 싶긴 하지만 뉴질랜드는 멀고 나는 바쁘고 가보고 싶은 다른 여행지도 많다. 그래서 이곳을 다시 방문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언제 또 와 보겠어?' '언제 또 이런 걸 해 보겠어?' 그 생각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한다. 평소였다면 빗속에서 우비를 입고 하는 트래킹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였다면 약 1시간 가량의 등산 코스는 가지 않고 차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평소였다면 번지점프대에 올라가거나 높은 출렁다리에 올라가 보는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겁이 많고 체력이 약하니까. 하지만 또 언제 이곳에 다시 와서 이런 경험을 해 보겠냐는 생각 때문에 몸을 사리지 않게 되고 나서서 해 보게 되고 멀리 돌아다니게 된다.

생각해 보면 삶의 모든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고 내가 도착한 모든 장소들이 다시 오지 못할 곳들이고 내가 한 모든 경험들이 다시 해보지 못할 일들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모든 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모든 것은 변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지금 이 장소에 다시 와 볼 수는 있겠지만 그 장소는 이미 그때의 그곳이 아니고, 거기 서 있는 나는 이미 그때의 내가 아니다. 했던 일을 또 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걸 하는 주체인 나는 이미 전의 나와는 다르다. 그래서 모든 경험은 일회성이다.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서 여행을 하는 경험뿐만 아니라, 내가 겪는 매 분 매 초가 모두 오직 단 한 번밖에는 겪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인 거다. 내가 지금 뉴질랜드에서의 시간이 '언제 또 와 보겠어?'라는 생각 때문에 너무나도 소중한 것처럼, 평소에 일상적으로 보내는 시간들도 마찬가지이다. 오로지 한 번 뿐이고, 다시는 맞이할 수 없고, 귀하디 귀하다.

어제는 비가 꽤 많이 내렸다. 그 비를 뚫고 우비를 걸치고 우산을 들고 마운트 쿡을 올랐다. 바닥에 고인 빗물 웅덩이를 피해서 조심조심 걸으며 경치를 구경했다. 눈앞에 펼쳐진 경치는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안개 낀 산맥은 눈이 부실 듯 아름다웠다. 빗물이 떨어지는 계곡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언제까지나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이었다. 빗속에서 물기 어린 공기를 느끼며 그곳을 걷는 경험 자체도 아주 즐거웠다. 비에 젖은 우를 벗어 두고 차로 돌아온 나와 친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 했으면 후회할 뻔했어!"라고 외쳤다. 나의 생도 이런 기분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두려워하지 말고 해 보고, 가볼까 말까 고민이 될 때에는 일단 일어나서 어디라도 가 보는 것.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은 내 일생에 단 한 번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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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7일,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창 밖 풍경을 내다보며.


*커버: Image by Sébastien Goldberg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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