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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Oct 08. 2023

[D-85] 나는 ORIGINAL

281번째 글

뉴질랜드 남섬 퀸스타운 부근에는 최초의 상업적 번지점프대인 카와라우 번지 센터가 있다. 뉴질랜드 출신 사업가인 A J Hackett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인데, 이 Hackett이라는 사람은 번지점프를 일반 대중들이 즐길 수 있도록 스포츠화하고 널리 전파하면서 여러모로 현대적인 번지점프의 근간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카와라우 번지 센터에 가면 이곳을 '오리지널 번지 점프(The original bungy jump)'라는 문구로 소개하고 있다.


이 '오리지널(Original)'이라는 단어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표현이다. 특히 사람에게 쓸 때. '오리지널'은 보통 원조, 최초, 원본처럼 첫 번째 대상을 가리키곤 한다. 하지만 사람에게 '오리지널'이라고 한다면 조금 다른 의미가 된다. '오리지널'인 사람은 단순히 그 사람이 어떤 분야의 개척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결코 비견될 수 없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고 개성 있고 진정성 있고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데이빗 보위 같은 사람. 데이빗 보위는 오리지널이다. 그는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갖고 있다.


나는 이 '오리지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딱 맞게 옮길 수 있는 한국어 번역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이 단어는 한국어로는 '독창적'이나 '창의적'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잦은데, 개인적으로 '오리지널'이라는 찬사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본 결과 지금까지 내가 찾은 가장 적절한 번역은 '유일무이하다'이다.


David Bowie, he’s original.
데이빗 보위, 그는 유일무이하다.


개인적으로 이 번역이 지금까지는 가장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어떠한 분야에서 최초의 존재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살리면서도 독창적, 창의적이라는 뜻도 담고 있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존재감과 진실성을 갖고 있다는 뉘앙스도 잘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나는 번역에 관심이 있을 뿐 전문가도 아니고 관련된 일을 해 보지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표현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한국어에서 이 '오리지널'과 가장 유사하게 사용되는 표현을 고르라면 '진짜'인 것 같다. "그 사람은 진짜야", 또는 줄여서 "그 사람은 찐이야."라고 칭찬하는 것이 영어에서의 '(사람) is original.'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다. 그 사람만의 독창적이고 비교 불가능하고 인정받을 만한 면모, 다른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 진실된 것을 만들어내는 면모, 그런 것들을 '진짜'라고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리지널한가? 나는 유일무이한가? 나는 진짜인가?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마주하며 살아왔다. 입에 발린 올바른 대답을 하자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네 존재 자체로 오리지널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유일무이한 존재이고, 그것만으로도 너는 진짜야." 그게 아마 맞는 대답일 테다. 하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때로 나는 내 삶 전체가 하나의 모방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나의 삶 전체는 전부 다른 사람을 얕은 깊이로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다른 수많은 삶들의 지루하고 따분한 반복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은 결국 누군가 해본 일을 누군가 해본 방식으로 하면서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심지어 때로는 내가 느끼고 드러내는 감정마저도 가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감정이 내가 진정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감정을 조잡하게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관찰한 것들, 영화나 책이나 다른 매체에서 관찰한 것들을 내 감정인 것처럼 흉내 내고 있다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의 모든 삶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속임수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느껴지고, 내 인생이 전혀 가치 없는 싸구려 복제품처럼 느껴진다. 나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 의아해지기만 한다.


아마 이런 기분은 나만 느끼는 건 아닌가 보다. 케이티 페리의 노래 'Firework'에도 이런 내용의 가사가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You don't have to feel like a waste of space
You're original, cannot be replaced
네가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아도 돼
너는 유일무이해,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없지

- 케이티 페리, 'Firework' 중에서.


나는 오리지널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직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불꽃놀이 불빛이 퍼지듯 나의 존재를 긍정하고 사랑하는 감정들도 색색깔로 터트릴 수 있겠지. 진실되게 그 감정을 느끼고 나 자신으로 충만해 있을 수 있겠지. 그런 기대를 남몰래 품고 뉴질랜드에서의 또 하루를 보내고 있다.



/
2023년 10월 8일,
숙소 발코니에 앉아 야경을 내려다보며.


*커버: Image by Sergio Otoy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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