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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Oct 10. 2023

[D-83] 속해야 사는 사람

283번째 글

오클랜드는 서울보다 다이나믹하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그렇다. 오늘로 오클랜드에 온 지 3일째가 되었는데, 낮에 점심을 먹으러 나가서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이 도시가 다이나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이 더 사람도 많고 더 활기차고 더 밝은 느낌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곳은 더 다이나믹한 느낌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 다양성 때문인 것 같다. 이곳은 이민자나 유학생이 많은 도시라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고 있다. 오늘 갔던 태국 음식점에서는 나이가 적어도 70대 중후반은 되어 보이는 직원이 서빙을 해 주셨다. 돌아오는 길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오전에 들린 마트에서는 다양한 비건 제품들을 팔고 있었다. 여러모로 서울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나는 오클랜드가 다이나믹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이 다이나믹한 도시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으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한국어가 들리면 돌아보게 되고, 같은 또래이거나 아시아계 사람이면 왠지 모를 친근감이 생긴다. 어제는 기념품점에서 직원과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던 한국인 부부와 우연히 마주쳐서 20분 정도 같이 다니며 통역을 해 드렸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었지만 나는 그분들에게 동질감과 친근감을 느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사람에게는 속할 곳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어떤 그룹에 속하는 경험을 필요로 한다. 가족, 친구, 또래 집단, 같은 취미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 국적, 인종처럼 나를 어떤 그룹 안에 집어넣고 싶어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어딘가에 속하기를 원하고, 자신이 속한 그룹을 통해서 스스로를 정의한다. 우리가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려고 그렇게나 애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내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고, 그 안에 속하기 위해서 자아를 찾아 헤매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이미 사회가 정의한 나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렇게나 노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도 않은 정체성에 따라 다르게 대우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그 점에 대해서 함께 공감할 수 있다. 그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룹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삼 대표성(representation)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나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데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주변 환경이나 미디어에서 발견하는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많은 아시안 배우들이 어린 시절 TV를 틀었을 때 자신과 닮은 사람을 보지 못했던 경험이 정체성의 혼란이나 부정을 가져다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작품 속의 유일한 아시안, 오디션장에서의 유일한 아시안으로 존재했던 경험이 얼마나 힘들었었는지도. 나를 찾는 여정에서 나와 닮은 사람을 보고, 그런 사람과 함께하는 경험은 정말 큰 의미가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는 건 더더욱 그렇다. 나와 닮은 롤모델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다.


다양성은 도시를 다이나믹하게 만들 뿐 아니라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고, 그 존재를 긍정하도록 도와주고, 내 삶에 안정과 애정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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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0일,
침대맡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Guillaume de Germai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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