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Oct 14. 2023

[D-79] 백문이 불여일견

287번째 글

뉴질랜드에 온 이후로 나는 틈만 나면 <반지의 제왕> OST를 듣고 있다. 뉴질랜드행 비행기에서도 미리 다운받아 온 <반지의 제왕>을 친구와 함께 보았고, 밤에 영화를 틀어 두고 와인이나 음료수를 마실 때도 무조건 <반지의 제왕>이다. 애초에 내가 뉴질랜드에 온 목적도 <반지의 제왕>의 촬영장소로 사용된 곳들에 와 보는 것, 영화에서 본 그 어마어마한 자연을 내 두 눈으로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작품의 열렬한 팬이고 내게 뉴질랜드는 다른 무엇보다도 <반지의 제왕>을 촬영한 곳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곳에 와서 확인한 것은 영화에서 본 바로 그 풍경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어딜 가나 이곳은 '가운데땅(<반지의 제왕>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대륙)'이었다. 마운트 쿡, 푸카키 호수, 테카포 호수, 밀포드 사운드 같은 유명 관광지들에서만 느낀 게 아니다. 그냥 평소에 길을 걸을 때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이곳은 '가운데땅' 같았다. 길에 자라는 잡초나 끝없이 펼쳐진 초원, 나무가 아니라 풀로 덮인 언덕들, 지평선 너머로 우뚝 솟은 설산 등, 그냥 눈에 보이는 풍경이 전부 다 '가운데땅'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 와서 뉴질랜드의 자연을 두 눈과 맨몸으로 맞닥뜨려 보고 나자 영화 속 가운데땅의 풍경들이 조금 다르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저께에도 친구와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익숙한 뉴질랜드의 풍경이 화면에 담길 때마다 "저기 뉴질랜드야!"를 연신 외쳤다. 물론 그전에도 이 영화의 배경으로 뉴질랜드의 자연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사진으로도 많이 보았고, 늘 가보고 싶어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과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은 아주 달랐다. 이제 영화 속에서 보이는 풍경은 '아는 곳'이었다. 뉴질랜드의 들판, 뉴질랜드의 산, 뉴질랜드의 강, 뉴질랜드의 호수, 뉴질랜드의 바위, 뉴질랜드의 잡초. 이제 나는 그것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 직접 와보기 전에는 그저 '영화의 배경' 또는 '아마 뉴질랜드에서 찍었을 그 어딘가'였는데 말이다.


알게 된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모호한 대상에 이름이 붙고, 두리번거렸던 것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손짓으로만 대강 가리킬 수 있었던 것을 특정해서 지목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리고 알게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동안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몰랐다는 걸 깨닫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뭔가를 깨닫는 순간, 그전에는 몰랐었다는 것도 같이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앎은 나의 지식을 늘려가는 과정이자, 나의 무지를 깨닫고 겸손해지는 과정이다. 나는 그 부분이 좋다. 또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이 정말 많다는 사실도 좋다. 내게 아직 알아가는 기쁨이 많이 주어질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기회가 내게 아주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 좋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들, 내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잘 몰랐던 것들, 상상하지조차 못했던 것들이 이 인생에 아직 수없이 많아서, 새롭게 알아가는 기분을 앞으로 더 많이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오늘은 <반지의 제왕>을 촬영한 호빗 마을에 투어를 다녀올 예정이다. 그곳을 다녀오고 나면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될지. 얼마나 많은 '모름'을 깨닫게 될지. 호빗 마을을 다녀오고 난 뒤 <반지의 제왕> 영화를 다시 보면 또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지. "저기 뉴질랜드잖아!"를 또 얼마나 연발하게 될 것인지. 기대를 품은 마음으로 투어를 기다리고 있다.



/
2023년 10월 14일,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뉴질랜드의 새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Fidel Fernando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80] 내일도 좋은 하루가 될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