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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Oct 22. 2023

[D-71]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295번째 글

요즘은 밥을 먹거나 짧은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에서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들을 틀어놓곤 한다. 길이도 짧고 내용도 단순해서 부담 없이 볼 수 있기도 하고, 보통 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소한 내용들이라서 기분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꽤 자주 보다 보니 갑자기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에 대한 기억이다. 그 친구는 애니메이션을 더빙하는 성우가 되고 싶어 했다. 어릴 때는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지 않았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던 나는 그 친구가 이야기하는 것들의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을 꽤 좋아했다. 그 친구가 목소리를 바꿔 가면서 성우 흉내를 내며 이야기에 색을 칠해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친구를 몇 학년 때 만났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이름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얼굴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지금 길에서 마주친다면 전혀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의 꿈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성우가 되고 싶다던 그 친구의 꿈. 그리고 그 친구가 성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상황과,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들을 따라 하던 것도 꽤나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름이나 만난 나이는 잊었는데 그 친구의 꿈은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느껴진다. 누군가를 기억할 때는 언제나 전부 다 기억하지 못하고 이렇게 파편만을 기억하게 된다. 아마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위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의 경우 내가 기억에 남길 만큼 인상 깊은 부분은 이름이나 얼굴, 뭘 하면서 같이 놀았는지 같은 부분이 아니라 꿈이었었나 보다. 친구가 꾸던 꿈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기억할 만큼, 꿈이라는 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나 보다.


어쩌면 다른 친구들도 그 친구를 꿈으로 기억하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친구들에게 이런 식으로 파편처럼 기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 내 꿈은 과학자였다. 그것도 엄청난 발견을 해서 노벨상을 받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 시절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들은 나를 '그 과학자 되고 싶어 했던 애'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노벨상 받고 싶다고 했던 애'로 기억할지도 모르고. 


나를 기억하는 건 내가 아니다. 나를 기억하는 건 나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이 다른 사람의 기억은 내가 전혀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과연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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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2일,
침대에 엎드려 가사가 없는 노래를 들으.



*커버: Image by Markus Spiske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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