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Oct 24. 2023

[D-69] 쉽기만 한 상상에서 벗어나

297번째 글

잠자리에 눕는 시간이 빨라졌다.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이다. 감기기운과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늘어난 업무량 등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서, 요새는 밤 10시만 되면 녹초가 되어 있다. 그래서 피곤에 절어 꾸벅꾸벅 졸다가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침대로 기어들어가곤 한다.


일찍 자는 것은 좋은데,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일찍 자는 만큼 일찍 눈이 떠진다는 점이다. 언제 자리에 눕든 간에 내 수면 시간은 6시간을 넘지 못한다. 밤 11시에 잠에 들면 새벽 5시 전에 눈을 뜨게 된다. 밤 10시에 잠에 들면 새벽 4시에 깨고, 9시에 잠들면 새벽 3시에 깬다. 무조건이다. 그냥 자동으로 눈이 번쩍 떠진다. 오직 6시간의 수면만이 내게 허락된 것처럼. 그 이상은 절대 누릴 수 없는 운명인 것처럼. 마치 누군가 금을 그어 놓은 것 같다. '여기까지는 와도 좋지만 그 이상은 넘어오지 마라.'라는 표지판과 함께 금을 그어 놓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새벽에 깨다 보니 일찍 잠에 들어도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면 잘수록 피로가 더 쌓이는 듯한 느낌이다. 차라리 밤에 조금 늦게 자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이 '6시간의 벽'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괴로워하기만 하고 있지, 딱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새벽에 깨면 피곤한 눈을 비비고, 이리저리 뒤척거리고, 억울하다는 생각만 할 뿐, 그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뭔가를 시도해 보고 있지는 않다. 운동을 더 많이 해서 깊게 잠에 들려고 한다거나, 숙면에 좋은 음식을 먹어본다거나, 영양제를 처방받거나 상담을 받아 본다거나, 많은 방법들을 시도해 볼 수 있었을 텐데도 나는 지난 일주일간 그런 노력들을 해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언젠가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참았다. 푹 자고 일어나서 개운한 몸으로 기지개를 켜는 나 자신을 상상하면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나는 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 문제가 마법처럼 사라지는 상상을 하길 좋아했다. 원인을 분석하거나 도움을 받아 보거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 문제가 해결된 이후의 모습을 상상하길 좋아했다. 그게 더 편하니까. 그게 덜 힘드니까. 나는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내 풍부한 상상력도 이럴 때에는 도움이 안 되었다. 나를 아주 생생한 상상 속에 잠겨 있도록 해 주었을 뿐.


이런 상상에서 벗어나서 다시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를 상상하고 나중을 상상하지 말고, 그 결과와 나중으로 가기 위해서 지금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겠다고 말이다. 상상은 쉬운 길이지만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 쉬운 길에서 벗어나야만 진짜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다.



/
2023년 10월 24일,
버스에 앉아서 라디오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Priscilla Du Preez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70] 믿기지 않는다고 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