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Oct 25. 2023

[D-68] 다리가 아파서 팔이 아픈

298번째 글

손목과 팔꿈치가 아프다. 지금 내 몸이 어떤지를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손목이 아프고 팔꿈치가 아프다고.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발이 심하게 부었고 무릎과 다리가 아프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리 쪽이 아니라 팔 쪽이 문제다. 팔꿈치는 욱신거리고 손목은 뻐근하다. 아침에 잠에서 깰 때면 팔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든다. 관절이 온통 굳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지금 내 팔이 이렇게 된 이유를 따지고 보면 결국 다리 때문이다. 장거리 비행으로 인해 다리가 잔뜩 부어서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팔이 아프다. 언뜻 보면 궤변처럼 들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이 되는 소리다. 우선 지난 일주일간 나는 다리에 힘을 잘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날 때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팔을 책상에 대고 힘을 주어 지탱해서 일어나야만 했다. 또 무릎을 굽히기 어려웠기 때문에 바닥에 주저앉을 수가 없었고, 바닥에 앉아야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팔에 힘을 줘서 몸을 떠받치고 천천히 내려앉아야만 했다. 게다가 다리의 부기를 빼기 위해서 나는 손으로 계속 발목이며 종아리를 주물렀다. 그렇게 손과 팔이 과로를 한 탓에 팔에 무리가 갔고, 그래서 지금 팔이 이렇게 아픈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리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 팔이 아프다고. 다리가 맡았던 역할까지 팔이 하다 보니 팔 쪽이 살짝 고장이 난 거라고 말이다. 내 몸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하나의 유기체라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실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새삼스럽게도 나는 이 통증을 통해서 내 팔과 다리가 모두 나로부터 뻗어 나왔다는 것을, 팔다리는 평소에 놀고만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개미집을 떠올리게 되었다. 개미집의 개미들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세포들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개미마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수행하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동작한다고. 그래서 개미집은 개미들이 만들어낸 사회이자 동지에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몸상태에 빗대어서 생각해 보면, 왼쪽 끝에 있는 개미가 제대로 일을 안 하면 오른쪽 끝에 있는 개미가 아플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 끝에 있는 개미의 사소한 실수가 왼쪽 끝에 있는 개미에게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사회 역시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것이다. 각자 스스로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내 주변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지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갑자기 문제가 생겨나게 된다. 예를 들면 내가 오늘 페트병을 해변에 버린다면, 그 페트병은 바닷속을 흘러 흘러 플라스틱 조각이 되고, 어느 물고기의 뱃속으로 들어가,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낯선 사람의 몸을 아프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인간으로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맡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나라는 한 사람의 의무는 무엇일지. 어떤 책임을 짊어지고 있을지. 이 사회의 '손목'과 '팔꿈치'가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라는 '무릎'은 어떤 일들을 하고 있고 어떤 것들을 신경 써야 하는지. 아픈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
2023년 10월 25일,
버스에 앉아서 무언가가 딸깍이는 소리 들으.



*커버: Image by bady abbas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69] 쉽기만 한 상상에서 벗어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