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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Oct 26. 2023

[D-67] 빠르고 느린 시간들

299번째 글

시간은 때로는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언제 느리고 언제 빠른 것일까? 할 일이 많을 때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른다고 느껴질까? 아니면 반대로 할 일이 많아야 더 빠르게 흐른다고 느껴질까?


갑자기 이 고민을 하고 있는 이유는 내일이 주말이 아니라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다. 내일도 일을 해야 한다니. 쉬는 날이 아니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심지어 나는 어제가 금요일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마도 이번 주에 업무량이 많았어서 그런 것 같다. 월, 화, 수, 삼일 연속으로 초과 근무를 해야 했어서 일한 시간으로만 따지면 거의 금요일 분량까지 다 채웠기 때문에 어제가 금요일처럼 느껴진 거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만큼 지난 삼일 간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게 맞을까? 지난 삼일을 하루하루 떠올려보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어제가 고작 수요일이었다. 금요일이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수요일이었던 것을 보면 시간이 너무 느리게 지나간 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알쏭달쏭하다. 내가 느끼기에 지난 삼일 간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 것일까? 아니면 느리게 흐른 것일까? 어쩌면 가까이에서 보면 빠르고 멀리서 보면 느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루 단위로 들여다보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데 멀리서 전체를 보면 느릿느릿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대체로 시간은 멀리서 봐야 느리게 흘러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또 반박할 만한 근거가 떠올랐다. 벌써 다음 주면 11월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 근거다. 2023년 새해가 시작된 게 아직도 엊그제 같은데, 이제 벌써 11월이고 두 달만 지나면 2024년이 찾아온다. 달력을 볼 때마다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또 올해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면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갔다는 느낌이다. 올해는 여름도 정말 길고 지루했던 데다가 비도 자주 내렸었고, 여러모로 시간이 참 안 간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던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또 조금 전 들었던 생각과는 반대로 시간은 멀리서 보면 빠르고 가까이에서 보면 느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상대성 이론이 이런 데에 쓰라고 있는 게 아닌 건 알지만, 이런 걸 보면 시간은 정말로 관측자와 그 상태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게 맞는 것 같다. 내 상태와 내 감정에 따라서, 또 어떤 범위로 들여다보느냐에 따라서, 시간에 대한 감각은 늘 달라진다. 심지어 나는 일관된 사람도 아니라서 일관성 있게 설명하지도 못한다. 그냥 어떤 경우엔 이렇고 어떤 경우엔 저런 거다.


오늘의 시간은 내가 느끼기로는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어제는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갔었다. 이번 달을 되짚어보면 시간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올해를 되돌아보면 또 느릿하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또 빠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 삶 전체를 들여다보면 시간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느리다가도 또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기도 하다. 또 빠르다고 느꼈던 시간이 갑자기 다시 보면 느려지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느렸던 시간들이 돌이켜 보면 빛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 시간들 속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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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6일,
침대에 누워 밖에서 들리는 TV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Diego PH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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