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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Oct 28. 2023

[D-65] 집착하는 것들이 줄었다

301번째 글

하루 일과가 단순해졌다. 아니, 하루 일과는 더욱 다채로워졌는데 꼭 해야 한다고 여겼던 일들의 목록이 짧아졌다. 게임이나 SNS 확인하기, 예능이나 드라마 챙겨보기, 앱 출석 체크하기 등, 예전에는 꼭 했었던 것들을 더 이상 열심히 하지 않게 되었다. 피곤하거나 활력이 줄어서가 아니다. 그냥 집착이 많이 사라졌다. 나도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놓치지 않고 해야만 한다는 집착을 상당히 많이 버리게 되었다. 내가 버려야겠다고 결심한 게 아닌데도 그냥 어느 순간 자연스레 사라져 버렸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 게임을 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게임에 접속했다. 다 게임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생명 바가 소모되는데, 이 생명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채워진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회사에서 퇴근할 때 꼭 게임에 한 번씩 접속했었다. 그동안 쌓인 생명을 쓰기 위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꽉 채워진 생명을 쓰기 위해서 씻기도 전에 게임부터 5분 정도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게임의 생명 바가 채워지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딱 그 시간에 접속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게임을 한다. 생명을 소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생각이 날 때만 가끔 들어가서 시간을 때우고 끝낸다. 이벤트를 꼭 다 해야 한다거나 무료 선물을 꼭 모두 모아야 한다는 생각도 더 이상은 들지 않는다. 이런 것들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었다. 그저 내킬 때만 가끔씩 게임을 즐기게 되었다.


SNS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인스타그램에 들어갔었다.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인스타 스토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아무리 일이 바빠도 짬을 내서 꼭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곤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인들의 소식을 놓쳐버릴 테니까. 또 내가 팔로우한 많은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 가수, 영화 공식계정들, 뉴스 계정들에 올라오는 정보를 놓치고 말 테니까. 나는 정보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어서 더욱 SNS에 집착했던 것 같다. 하루가 지나면 사라지는 정보라는 인스타 스토리의 개념은 나를 끊임없이 인스타그램에 접속하도록 만들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며칠에 한 번 인스타그램에 들어간다.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의 소식은 가끔 생각이 날 때 찾아보고, 뉴스 계정들도 가끔씩 들어가서 잠깐 확인하고 나온다. 인스타 스토리도 다 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것들만 대강 확인한다. 내가 놓치게 될 정보들이 더 이상은 그렇게까지 아쉽지 않다. 그저 내킬 때만 가끔씩 SNS를 즐기게 되었다.


놓치는 것이 아쉽지 않게 된 건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드라마를 1화부터 끝까지 꼭 다 봐야만 하는 성격이었다. TV에서 하는 드라마라면 꼭 드라마가 시작하는 시간에 TV 앞에 앉아서 기다렸었다. 그리고 꼭 오프닝부터 봤었다. 앞부분을 놓치는 게 싫어서. 만약 시간이 없어 한 화를 보지 못했다면 다음 화를 방영하기 전에 꼭 재방송을 찾아보거나 OTT로 챙겨보곤 했었다. 또 한번 시작한 드라마는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중간에 그만두는 법이 없이 끝까지 꼭 다 보았다. 나는 그런 완결성에 집착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드라마는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가 관심이 생기면 몇 분 정도 보고 다른 채널로 돌리는, 딱 그런 정도의 위치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OTT로 드라마를 보다가도 재미가 없으면 중도에 하차하고, 앞부분을 보지 못하더라도 줄거리를 찾아보는 정도로 해결하게 되었다. 재밌게 보던 드라마를 중간에 한 화 빼먹어도 꼭 다시 찾아보기보다는 그냥 친구들이나 함께 보던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간단히 물어보고 넘어가게 되었다. 내가 놓친 이야기들, 내가 놓친 영상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졌다. 그저 내킬 때만 드라마를 즐기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집착하던 것들의 목록이 줄어들고 나자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것들에는 더는 전전긍긍하지 않게 되었고, 그러자 여유가 생겼다. 시간적인 여유와 정신적인 여유 둘 다. 나는 이제 버스 안에서는 가만히 눈을 감고 쉬거나 글을 쓴다. 시간이 나면 평소에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잊어버렸던 음악을 한 곡 더 듣고, 관심 있었던 것들에 대해 찾아보고, 스트레칭을 조금 더 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더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내가 게임과 SNS와 드라마에 투자하던 시간을 어딘가 다른 곳에 투자하게 되었다. 그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한다거나 뭔가를 정말 열심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유가 생겼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나는 갖게 되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게임과 SNS와 드라마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나는 게임과 SNS와 드라마에서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
2023년 10월 28일,
소파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Aaron Burde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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