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Nov 01. 2023

[D-61]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

305번째 글

나는 요즘 거의 매일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체력을 늘리고 자세를 교정하고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다. 그런데 운동을 할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 운동을 하며 숨을 헐떡일 때, 운동 후의 근육통을 견딜 때, 별로 심하게 운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 보통 그런 생각이 든다. 아프지 않고 튼튼하고 체력도 좋은 새 몸을 갖고 싶다고. 말랑말랑하고 갓 만들어진 건강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이다. 다시 아기가 되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새로 만들어진 건강한 성인의 몸을 갖고 싶다. 거북목도 없고 라운드숄더도 없고 족저근막염도 없고 손목터널증후군도 없는, 조금도 혹사당하지 않았고 아직 닳지 않은 새 신체를. 그런 신체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새로 갖고 싶다.


최근에 나는 거의 매일 운동을 하고 있으니까 이런 생각도 거의 매일 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 아침에 헬스장에 갔을 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또 한 가지의 생각이 추가로 들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내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지금 나는 내 몸을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운동도 해 가며 열심히 살고 있는데, 아무런 노력도 없이 건강한 새 신체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나의 노력과 내가 이런 몸을 갖게 된 과정, 즉 나의 인생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지금의 내 몸과 그 몸을 위해 애쓰고 있는 나 자신의 노력을 우습게 만드는 일이라고. 그래서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사실 운동을 할 때가 아니어도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에 자주 하는 편이다. 몸뿐만 아니라 나는 새로운 나를 갖고 싶다. 신체도 건강한 새 몸을 갖고 싶고, 마음도 깨끗한 새 마음을 갖고 싶고, 성격도 사고회로도 가치관도 다 새로 리셋하고 싶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보다 덜 아프고 더 행복하고 싶다. 내가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들, 내가 후회하는 일들, 내가 잘못 내렸다고 생각하는 선택들을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고 싶다. 새로운 기회를 갖고 싶고 새로운 가능성을 갖고 싶고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백지의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이런 욕망들 역시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새 마음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지금까지 애써온 내 마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게임을 초기화하듯 새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것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무 노력 없이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당연히 갖고 있는 것일 테지만, 그런 생각을 지금처럼 매일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런 생각은 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이런 부정은 내 인생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지금의 나는 다시 태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는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어제의 고됨을 넘어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면 이런 '다시 태어나고 싶어.'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보다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오늘을 살고 내일을 시작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내가 '다시 태어나고 싶어.'만 반복했다면 나는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을 테고, 나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기 위한 한 걸음을 걷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내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마치 새것처럼 내일의 인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오늘 이 헌 인생을 잘 살아야 한다. 그렇게 오늘을 충실히 살면, 어쩌면 내일 아침에는 신선하고 개운한 기분으로, 마치 새 사람이 된 듯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2023년 11월 1일,
버스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Ben Vaughn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62] 나는 나와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