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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02. 2023

[D-60] 힘차게 걷기

306번째 글

내가 이따금씩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걷는지 나도 몰랐었는데, 내가 러닝머신을 하는 걸 보고 있던 헬스장 PT 선생님이 말씀해 주셔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며칠간 나는 내 걸음걸이를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그 결과 내 기본 걸음걸이가 그렇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에 늘 그러는 건 아니고 다리에 힘이 없을 때나 기운이 없을 때 주로 그러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출퇴근할 때. 새벽에 일어나서 무거운 몸을 끌고 헬스장에 갈 때. 러닝머신에 오른 지 15분이 넘어갈 때. 그럴 때 발을 끌면서 걷곤 한다. 


PT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발을 끌면서 걸으면 허벅지와 엉덩이 힘을 써서 걷지 않게 되고 무릎이나 발목 같은 관절 부위들이 힘을 받아서 그쪽에 무리가 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발을 끌지 말고 위로 들었다가 내려놓는다는 느낌으로 걸어야 한다고. 내가 그 감각이 어떤 건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걷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힘차게 걸어봐요 회원님! 기운차게 힘차게 걸으면 돼요!" 그 말을 들으니 어떤 걸음걸이가 '잘' 걷는 것인지가 대강 이해가 됐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힘찬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듯이 걸으면 되는 거였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평소에도 그런 힘찬 발걸음으로 걸어 다녀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지난 며칠간 한번 그 '힘차게 걷기'를 시험해 보았다. 그렇게 걸으려고 신경을 쓰면서 한번 주의 깊게 관찰을 해 보았는데, 그 결과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우선 힘차게 걸으면 나도 모르게 배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불편할 정도로 힘을 주는 건 아니고 적당히 배와 허리가 쭉 펴지는 느낌이다. 걷는 데에 복근을 비롯한 코어 근육 힘을 써야 한다는 뜻이 이런 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은 걸어 다니면서도 자각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새로 알게 되었다. 또 천천히 걸으면서 힘차게 걷는 것은 묘하게 힘이 든다. 약간 빠르게 걸어야 자연스럽게 힘차게 걸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요 며칠간 내 출퇴근 시간이 10분 정도 줄어들었다. 힘차게 걸으면서 속도가 빨라져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이렇게 힘차게 걸으면 동작도 크고 근육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아프고 힘들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힘차게 걸으면 발바닥이나 종아리가 덜 아프다. 나는 족저근막염이 있어서 늘 발바닥이 아픈데, 이렇게 기운찬 발걸음으로 걸으니 같은 거리를 걸어도 다리에 무리가 덜 가는 것 같다. 저녁이면 늘 다리가 붓는데 힘차게 걷기를 시도한 이후로는 붓는 정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놀라운 발견이다.


게다가 그냥 느낌일지는 몰라도 걸음을 힘차게 걸으니까 왠지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다. 처음에 힘차게 걷기를 시작했을 때는 출근길에 걷는 데에 기운을 다 써 버려서 회사에 도착하고 나면 녹초가 되어 있는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것 역시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였다. 오히려 평소보다 높은 텐션과 좋은 기분으로 회사에 도착해 책상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힘차게 걷는 데에 에너지를 쓰니까 오히려 내가 받는 에너지가 많아진 것이다. 마치 걸음을 걸을 때마다 조금씩 에너지가 적립되는 것처럼 말이다.


걷는 것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일상 속에 이런 변화가 찾아왔다. 의식적으로 힘차게 걸으려고 노력하자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마음 상태는 몸 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더니, 이런 사소한 걸음걸이도 그렇게 영향을 주나 보다. 사람의 몸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이 정말 신기하다. 우리의 신체는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어제 나는 힘차게 걸었고 오늘도 그랬다. 내일도 역시 그럴 생각이다. 피곤한 출근길과 지친 퇴근길은 어쩔 수 없지만, 그 길을 걷는 내 걸음걸이는 힘차고 기운 넘치게 만들어 보려고 한다. 물론 걷는 것만으로 내 붓고 뭉친 다리가 마법처럼 단번에 나아지거나 내 인생이 갑자기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확인해 본 결과, 힘차게 걷는 것은 통증을 줄여 주고 내게 에너지를 더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변화를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기에 더더욱.



/
2023년 11월 2일,
버스에 앉아 라디오의 음악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Arek Adeoye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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