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Oct 31. 2023

[D-62] 나는 나와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304번째 글

나는 나를 타인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에세이 챌린지의 컨셉인 '나와 화해하기'만 봐도 알 수 있다. 나 자신을 나와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에 '나와 화해한다' 같은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타자화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고, 내가 처한 상황에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너무 깊이 몰입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덜 괴롭힐 수 있도록 해 준다. 나를 다른 사람처럼 생각하면 나에게 덜 잔인하게 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말, 다른 사람을 보면서는 하지 않을 생각들을 나 자신에게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자각을 할 수 있어서.


그런데 이런 타자화는 가끔 내게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든다. 내가 내 삶을 충실히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 말이다. 나 자신을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 인생 역시 다른 사람의 인생처럼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생각이 가끔씩 든다. 내가 지금의 나를 둘러싼 이 상황, 지금 겪고 있는 이 경험에 충분히 몰입하며 살고 있지 않다고.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인생인데도 마치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처럼 멍하니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원래 나와의 거리감을 적당히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감정적이고 연약한 자아를 갖고 있고 너무나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을 의심하고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은 감정들에 휩싸일 때는 이렇게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거리를 두고 생각하면 "내가 대체 왜 그랬지?"나 "그 사람이 나한테 왜 그랬지?" 같은 고민들을 덜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하듯이, "그럴 수도 있지."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니까." "그 사람도 별생각 없이 그랬던 걸 거야." "이제 그 사람은 기억도 못 할걸?" 같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고, 지나친 감정과 생각들로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것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거리감은 실제로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과연 어느 정도로 거리감을 두고 나를 보아야 하는 것인지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나 자신의 마음 관리를 위해서 선택했던 이 타자화가 나를 내 인생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문제들에 빨리 대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고, 진지한 고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고, 쳐다보지 않고 돌아서게 만드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나 자신과 어느 정도로 가까이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나 자신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이제 삶의 방식을 바꿀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선택했던 대로 나와 거리를 두는 삶을 살다 보니 너무 멀리 떨어진 것일지도. 그래서 기존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제 약간 가까이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는 늘 그 자리에 비슷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제 나와의 거리를 조금 좁혀도 될 만큼 내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뜻인지도 모르고. 어찌 되었건 이제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볼 생각이다. 내 인생을 바라보고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직접 살아 보려고 한다.



/
2023년 10월 31일,
소파에 앉아 TV와 대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Dave Hoefler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63] 월요일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