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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10. 2023

[D-52] 퍼스널 상황

314번째 글

사람은 '퍼스널 컬러'에 맞는 색깔의 옷을 입었을 때 가장 생기 있게 보인다고 한다. 반대로 어울리지 않는 색깔을 입으면 답답해 보이거나 안색이 안 좋아 보이기도 한다고. 그래서 본인이 가진 매력을 100%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나에게 어떤 색이 어울리는지를 찾아서 그 색깔 위주로 코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퍼스널 컬러'처럼, '퍼스널 상황'이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의 옷이 나를 가장 돋보이게 해 주는 것과 같이, 나를 돋보이게 해 주는 상황과 나를 100%로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 있다고 말이다. 어떤 사람은 급하게 일을 끝내야 하는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또 어떤 사람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낸다. 어떤 사람은 약간의 백색 소음이 있어야 집중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실력을 잘 발휘한다. 사람마다 가장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 제각각 다른 것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최고의 능력치를 발휘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우선 몸이 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주변 온도가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우면 집중력이 확 떨어진다.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왠지 기운이 빠진다. 햇빛이 잘 비치는 날이 좋다. 또 옷도 편하게 입어야 한다. 불편한 옷을 입으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인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나는 무조건 신발이 편해야 한다. 발이 불편하면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약간 불편하게 입고 있어야 능률이 오른다던데 내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편안함을 느낄 때 최고의 내가 된다.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 그게 내 퍼스널 상황이다. 단순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다. 나는 불안과 걱정을 끌어안고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 마음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어야 뭐든지 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의심이 거두어져야 한다. 나를 둘러싼 상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어야만 한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상황이 왜 나에게 주어졌는지를 이해해야만 나는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 확신을 갖고 내 신념대로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어야 최고로 편안할 수 있고 최고로 잘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나는 준비를 열심히 했을 경우에 편안해진다. 내가 빈틈없이 준비되어 있을 때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무언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껴지면 이내 불안이 찾아오고, 이 불안은 내가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무슨 상황이 닥쳐도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런 나의 노력은 때때로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나를 완벽한 준비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완벽주의는 불필요한 부분까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결국 나를 편안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나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서 최고의 나를 만들어내려는 나의 노력이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불편함 속으로 밀어 넣고, 최고의 나를 만들어내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언제나 100%일 필요는 없다고. 누구도 늘 100%일 수는 없다고 말이다. 애초에 퍼스널 상황을 찾으려는 나의 노력 자체가 언제나 퍼스널 상황 속에 놓여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


오늘의 상황은 내게 70%, 60%, 50% 정도의 컨디션밖에는 뽑아내지 못할 수 있다. 그럴 때 나는 그 70%, 60%, 50% 안에서 최대한으로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다. 내가 70%의 능력만을 발휘할 수 있을 때, 그걸 억지로 100%로 만들려고 애쓰지 말고, 70%를 온전히 다 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거다. 70%를 가지고 있다면 70%만큼 잘하면 된다. 100%를 만들기 위해 피가 날 때까지 나를 채찍질할 필요는 없다. 또 반대로 70%를 가지고 있으면서 고작 50%만 쓰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 내가 가진 70%만큼, 딱 그만큼을 잘 쓰면 된다.


나는 언제나 100%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놓인 70%, 60%, 50%의 상황을 100%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2023년 11월 10일,
버스에 앉아 덜컹이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Saad Chaudhry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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