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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11. 2023

[D-51] 눈치를 안 볼 때

315번째 글

어제 나는 '퍼스널 상황'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했다(글 보러가기). 사람마다 가장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 나의 '퍼스널 상황'은 내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또 이런 상황을 억지로 만들려는 나의 노력이 오히려 내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니까 언제나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고 그냥 내가 그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고 오면 된다는 것까지.


어제 글을 쓰면서 나는 최근에 내가 많이 편안해지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나는 예전만큼 두려워하지도, 불안해하지도, 겁을 먹지도 않게 되었다. 불편한 상황을 견디는 역치도 높아졌고, 전반적으로 조금 느슨해졌다. 나를 꽉 옭아매고 있던 답답한 겉옷을 한 겹 벗어던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내가 좋은 쪽으로 변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내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해서 내린 내 결론은 그것이다. 나는 평소에 눈치를 아주 많이 보는 편이다. 주변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극도로 신경 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예전보다는 덜 의식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어떨지 몰라 두려워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예전만큼 그 부분 때문에 지레 겁을 집어먹지는 않게 되었다.


예를 들면, 나는 예전에는 얼굴에 뾰루지가 나면 그걸 감추기 위해 애를 썼었다. 화장품을 바르고, 패치를 붙이고, 억지로 짜기도 하고, 어떻게든 가리거나 안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었다. '빨리 낫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 거다. 치료보다는 감추는 데에 집중하다 보니 뾰루지가 덧나기도 했었고 더 오래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젠 얼굴에 뾰루지가 나도 그렇게까지 가리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여전히 신경 쓰이긴 하지만 부끄럽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얼굴에 뾰루지 하나 안 나는 사람은 없으니까. 다른 사람의 얼굴에 난 뾰루지를 보고 '저 사람은 이상하다'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이런 사소한 데에서부터 더 큰 부분까지, 내 태도에는 조금씩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좀 더 큰 부분을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이제 질문하는 것을 많이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내가 사기꾼 같다고 생각했었고,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내 진짜 실력이 들통날까 봐 두려워서 질문을 잘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혼자서 답을 찾고 혼자서 알아가기 위해서 밤을 새 가면서 끙끙댔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르면 모른다고 당당히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가끔씩은 아는 척을 하고, 여전히 내 부족한 실력이 드러날까 봐 겁을 먹지만, 다른 사람들이 '쟤는 왜 저것도 모르지?'라고 생각할까 봐 질문을 속으로 삼키지는 않는다. 그게 결과적으로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내가 잘 모른다고 해서 배척하거나 나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덜 의식하게 되면서 나는 훨씬 더 편안해졌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직업적인 부분에서도, 사회적인 부분에서도 나는 더욱 편안한 상황에 놓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나를 60%밖에 보여주지 못했을 상황에서 이제는 70%, 80% 정도로 나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더 잘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눈치를 덜 보자 나의 '퍼스널 상황'인 편안함에 더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아주 큰 변화다. 이런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편안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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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1일,
극장 로비에 앉아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Wesley Tingey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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