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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12. 2023

[D-50] 궤도를 돌고 있는 듯해

316번째 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계속 걷고는 있는데 앞으로 나아가지지를 않는다. 어차피 앞으로 못 갈 거라면 가만히라도 있으면 편할 텐데, 마음이 불안해서 가만히 있지도 못한다. 그저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 움직임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채로.


인공위성처럼 일정한 궤도를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같은 자리를 뱅뱅 돌고 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 앞으로 잘 가고 있는데 나만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만 뒤처지고, 나만 발전이 없고, 나만 그 자리에 혼자 남은 것만 같다.


이렇게 정체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면 불안해지고 무력해진다. 홀로 뒤처졌다는 불안감에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더 불안해진다. 내가 뭔가를 한다고 해서 다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위치를 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서 무기력해지고, 이 무기력증 때문에 또 무언가를 시도해 보기 어려워진다. 불안감, 무력감, 불안감, 무력감, 이렇게 반복되고 있다. 마치 같은 궤도를 계속 돌기 때문에 보이는 풍경도 똑같은 것처럼. 나는 불안과 무력을 번갈아 가면서 마주치고 있다.


Trying to make a move just to stay in the game,
I Try to stay awake and remember my name, but
Everybody's changing
And I don't feel the same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 중이야
깨어 있으려고, 내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하지만 모두가 변해가고
나는 그렇지 않은 것만 같아.

- 킨(Keane)의 'Everybody's Changing' 중에서.


문득 'Everybody's Changing'에 나오는 이 가사가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노래는 좋은 비유는 아니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변화는 그다지 좋은 의미가 아니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변화는 발전이 아니라 '변해버린' 것이다. 예전엔 좋았던 것들이 더 이상은 좋지 않고 의미가 퇴색되고 빛이 바래 버리는 그런 변화.


어쩌면 내 상황도 이런 것일지 모른다. 나는 조금도 색이 바래지 않은 채 언제나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들이, 이 세상이 좋지 않은 쪽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일지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나는 여전히 절망할 수밖에 없다. 나를 제외한 세상이 그렇게 변화했다는 것은 내게도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 그 세상을 버텨내야 하니까. 게다가 내가 여전히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혼자 뒤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 변화가 좋든 나쁘든 똑같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해답은 그저 이 기분을 떨쳐 내는 것밖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 실제로는 나만 뒤에 남아버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실제로 뒤처진 것이 맞다고 해도 나처럼 뒤처진 사람은 많을 것이고, 다시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분을 떨쳐 내기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변해가는데 제자리걸음을 하고 같은 궤도를 돌고 있는 듯한 이 기분은 변하질 않는다.


아마 뭐라도 하는 수밖에는 답이 없겠지,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기분을 없애 버리기 어렵다면, 그냥 이런 기분을 내가 느낀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 기분과 손을 잡고 걷는 수밖에 없다. 천천히 걸어도 좋고 조금 빠르게 달려 봐도 좋고 잠깐 멈춰서 쉬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냥 조금씩 뭐라도 해 보면 된다.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
2023년 11월 12일,
소파에 앉아 TV 프로그램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NAS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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