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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14. 2023

[D-48] 피곤했던 모양이다

318번째 글

내가 지난 며칠간 꽤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걸 모르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야 알았다. 언니가 아침에 해준 말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소파에서 잠깐 졸았는데, 언니 말로는 그때 내가 이를 갈았다고 한다. 나는 평소에는 이를 갈지 않고 아주 피곤할 때만 이를 가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어제 오랜만에 이를 갈았다는 것을 보면 어제 꽤나 피곤했었던 것 같다.


나는 피곤했다. 그걸 깨닫고 나자 지난 며칠간 있었던 많은 일들이 설명이 됐다.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일이든 취미 활동이든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는데 그게 피곤했어서 그런 거였다. 피곤해서 집중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던 거였다. 또 평소보다 더 식욕이 강해져서 크림이 잔뜩 든 케이크나 초콜릿이 발린 과자 같은 것들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찾아 먹는 것은 귀찮아져서 그냥 식사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게 피곤해서 그랬던 거였다. 피곤한 몸이 당분과 자극을 원했지만 그걸 몸 안으로 집어넣을 기력이 없어서 그랬던 거였다. 며칠 동안 나는 울적한 감정에 시달렸고 외로웠고 동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그것도 역시 피곤해서 그랬던 거였다. 몸이 피곤하다 보니 자꾸 그런 생각들에 빠져들었던 거였다.


피곤했다는 것을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서는 겨우 씻고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조금 더 자고 싶어서 이불 속에서 뒤척였고, 몸이 무거워서 그냥 빨리 눕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건 일상 속에서 흔히 느끼는 피로와 닮아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퇴근 후에 피곤한 건 당연하니까, 아침에 피곤한 건 당연하니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이 피곤했었는지를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제대로 살피고 있지 않았던 내 몸 상태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가 아팠고 눈이 충혈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뒷목이 뻐근했고 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약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상태였다. 우습게도 나는 피곤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도 이 증상들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다만 나는 이 증상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머리가 아프다고만 생각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일을 하니까 눈과 목이 아프다고만 생각했다. 몸에 힘이 들어간 건 추워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은 그냥 속이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정도의 통증과 피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걸 한데 모아서 전체적으로 살펴보니 다른 답이 나왔다. '내게 휴식이 필요한가 보다'라는 결과가 말이다.


몸과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타이밍인 것 같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몸이 노곤하게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내 몸과 내 마음을 흐물흐물하게 풀어 주어야 할 때다. 뭉치고 쌓이고 덩어리 진 피로를 가시게 하기 위해서.



/
2023년 11월 14일,
침대에 엎드려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를 들으.



*커버: Image by Annie Spratt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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