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Nov 27. 2023

[D-35] 서투른 인생들

331번째 글

나는 내가 서툴게 행동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잘 관리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때, 자신감 있게 해결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그럴 때 나는 바짝 긴장하고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모르는 상황, 내가 서투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무슨 상황이 닥치든 예상했다는 듯 익숙하게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정보에 집착한다. 무엇이든지 알기 위해서 애를 쓴다. 내가 그것을 몰라서 생길 수 있는 서투름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서툰 나'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 자신에게 아주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기 때문이다.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만큼, 나 자신도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래서 나는 서툴러서는 안 된다. 나는 몰라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잘해야만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우스운 점은 내 이런 성향이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더 서툴게 만든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준비하려고 애쓰다 보니 나는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칠 때 더 많이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더 오래, 더 많이 우왕좌왕하게 된다. 또 일을 처리하는 내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대처하는 효율도 자연스레 떨어진다. 서툴지 않으려는 나의 노력이 나를 더욱 서툴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나는 언제나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남들과 나 자신에게 서투른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또 '내려놓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데에는 이런 서투름에 대한 용서도 포함되어 있다. 서투른 것은 잘못이 아니다, 서툴러도 괜찮다, 서툴러도 배워서 잘하면 된다, 내 인생의 하루하루는 처음 겪는 것이므로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 강박을 줄여 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 스스로도 조금씩 믿기 시작했다. 서툴러도 괜찮다는 사실을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이미 서툴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누구도 같은 날을 두 번 살지 못한다. 누구도 인생을 예습하지 못한다. 어제는 난생 처음 겪어 보는 날이었다. 오늘도 처음 겪어 보는 날이고, 내일도 처음 겪어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매 분 매 초를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을 헤쳐나가며 살아간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부모님도 사실은 서툴렀었다. 그 서투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잘 자랐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에는 나 혼자만 정신없이 헤매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던 선배들도, 팀장님도, 사실은 서툴렀었다. 인생은 서툴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심지어는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도 우리는 서투르지 않은가. 처음 맞이하는 죽음이므로.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점을 오랜 강박과 스트레스와 자기혐오 끝에 깨닫게 되었다. 아직도 나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괴롭히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내가 서투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많은 상처와 아픔들을 겪은 끝에.



/
2023년 11월 27일,
지하철에 앉아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



*커버: Image by Lucas Marcomini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36] 나무라지 않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