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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28. 2023

[D-34] 이 세상은 나를 사랑한다

332번째 글

때때로 인생이 힘겹게 느껴질 때면 인생으로부터 미움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불쑥 찾아들곤 한다. 나만 미워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사랑하고 있는 듯한 생각. 아니면 선택받은 몇몇 사람만 사랑하고 나머지는 가차 없이 대하고 있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들어서 괜히 억울해지고 속상해질 때가 있다.


반면에 세상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갑자기 행운이 내게 찾아오거나 내게 벌어진 일들이 딱딱 맞물려서 좋은 결과를 내놓았을 때. 그럴 때면 인생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해서 우쭐해지거나 마냥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죄책감과 불안에 빠지고 만다. 나는 이렇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왜 내게 이런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믿을 수가 없어서다. 이 행운은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가야만 할 것 같고,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나에게 이런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 이상하다. 나는 인생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 인생은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것만큼은 사실이다. 인생은 나를 사랑한다. 그래서 내게 인생이 주어졌다. 하지만 인생은 나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인생은 다른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딱 그만큼만 나를 사랑해 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특별히 날 더 미워하지도 않고, 특별히 날 편애하지도 않으면서.


그런데 나는 인생이 내게 주는 사랑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내게는 채워야 하는 사랑이 아직 남아 있다. 그 사랑은 나 자신으로부터 채워질 수 있다. 내게 필요한 사랑의 총량이 100이고 인생은 내게 준 사랑이 50 정도라면, 나머지 50은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반쯤 찬 저금통을 꽉 채우기 위해서는 동전을 더 구해서 넣어야 하듯이. 


인생이 나를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만큼 나를 더 사랑해 주어야 한다. 체감상 인생이 내게 준 사랑의 양이 줄어들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여전히 50만큼 존재할 테지만, 내가 느끼기에 30 정도로 줄어들어 있어서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거다. 그러니까 그 비어 있는 20 정도를 내가 사랑으로 더 채워 넣어야 한다. 저금통이 꽉 차도록 나를 더욱 많이 사랑하고 아껴 주어야 한다.


그럼 반대로 인생이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를 조금 덜 사랑해도 될까? 아니다. 이럴 때는 더더욱 많이 사랑해야만 한다. 이 때는 저금통 자체가 커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체감상 인생이 주는 사랑의 양은 50에서 100으로 늘어나지만, 저금통의 용량이 100이 아니라 200이 되어 버리는 거다. 갑자기 커진 저금통 때문에 빈자리도 늘어난다. 그래서 평소처럼 50만큼만 나를 사랑하면 여전히 50의 빈자리가 남아 있게 된다. 이럴 때는 100만큼 나를 사랑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저금통을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가 있고, 마음에 빈자리를 남기지 않을 수가 있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 살아가고, 사랑은 사람을 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욱 사랑하고 더욱 아끼고 더욱 많이 안아 줄 생각이다. 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
2023년 11월 28일,
책상에 앉아 생활 소음들을 들.



*커버: Image by Dae Jeung Kim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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