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번째 글
요즘은 TV 화면보다는 다른 전자기기의 화면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 같은 OTT로 영상을 시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작품을 골라서 볼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있다. 바로 모니터나 핸드폰으로 넷플릭스를 보다 보면 화면에 내가 자주 비친다는 점이다. TV로 볼 때는 내가 비치는지 잘 모르는데, 화면이 작아지고 내 눈과 가까워지니 내 모습이 더 잘 비치게 된다. 그래서 가끔씩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몰입이 깨지는 경우가 있다.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이 제3의 등장인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가도, 화면에 비치는 나를 보면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와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내가 비친다'는 점은 작품 감상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나 자신을 이야기 속에 투영해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는 결국 본질적으로 그 작품에 비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이다. 나는 내가 아는 만큼 작품을 보고, 내 눈에 보이는 만큼 작품을 보고, 내가 이해하고 싶은 대로 작품을 이해한다. 나는 내 안에 담겨 있는 나 자신을 그 작품을 통해서 본다. 내 안에 담긴 지식이며 경험, 태도, 마음, 분위기 같은 것들을. 그래서 내가 보는 작품은 다른 사람이 보는 작품과 다르다. 우리는 같은 영상을 보면서 제각각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작품에 비쳐 들어간 제3의 주인공인 나 자신 때문에.
이 점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매체뿐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 감상에 다 해당된다. 공연을 보던 음악을 듣던 책을 읽던 그림이나 조각을 보던 건축물을 보던 모두 우리는 거기에 비친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그래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결국 예술 작품을 통해서 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이다. 마치 유리창을 통해서 감상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깨끗한 유리여도, 아무리 얇은 유리여도, 아무리 반사가 적은 유리여도, 유리창이 있는 한 약간은 내가 비치기 마련이다. 내가 아무리 나 자신을 투영해서 보지 않으려 해도 나는 유리에 비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나는 작품 속에 들어가 버리고 만다. 작품과 나를 떼놓고 보려 해도 감상자가 나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찾아보니 스페인의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책은 거울이다. 이미 내면에 가지고 있는 것들만을 볼 수 있다.(Books are mirrors: you only see in them what you already have inside you.)" 어떤 맥락으로 나온 말인지, 어떤 책에 나온 문구인지 알 수 없지만 오늘 내가 넷플릭스 화면을 보며 했던 생각과 비슷한 의미이지 않을까. 내가 보는 예술 작품은 어느 정도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나는 작품을 통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