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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25. 2023

[D-341] 열광할 수 있는 행복

25번째 글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내 열정을 쏟을 대상이 있다는 것, 사랑할 만한 대상을 찾았다는 것, 기꺼이 사랑을 쏟아 붓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 열렬한 사랑의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특정 사람일 수도 있다. 연인이나 가족, 친척, 친구 같은 가까운 사람. 아니면 좀 더 먼 사람일 수도 있다. 배우나 가수, 셀럽, 스포츠 선수, 영화감독, 화가, 작가 등. 전혀 알지 못하고 스쳐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애정을 퍼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동물일 수도 있다. 반려동물들에서부터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특정 종류의 동물 전체를 사랑할 수도 있고, 범고래나 호랑이 같은 더 거리가 먼 동물을 사랑할 수도 있다. 또는 살아 있지 않은 것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예술 작품 같은 것. 어떤 영화, 연극, 소설, 시, 뮤지컬, 오페라, 그림, 조각 같은 특정 작품에 열광할 수도 있다. 아니면 특정 작품이 아니라 어떤 장르 자체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아니면 물건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자동차나 비행기, 인형, 문구 용품, 우표, 동전 같은 것들과. 아니면 요리나 수공예, 다양한 분야의 창작 활동과 같이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열정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또는 여행이나 운동, 미식처럼 어떤 경험이나 활동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이런 열정과 열중을 흔히 '덕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덕질'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퍼붓는 사랑을 낮추어 이르는 단어이다. '덕질'에 붙은 접미사 '-질'은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덕질'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단어 자체에도 멸시가 담겨 있고, 대중적인 인식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덕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덕질'이라고 부를 만큼 사랑할 수 있는 관심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관심사를 하나 찾아 두면 삶이 괴롭고 힘들 때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때로는 이런 관심과 사랑이 인생의 목표가 되기도 하고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양한 관심사를 찾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취향은 어떤지를 잘 안다는 것도 사실 대단한 일이다. 이런 관심사들이 모여서 내 인생은 훨씬 더 다채로워지고 풍부해진다.


또 덕질은 시야를 넓혀 준다. 예를 들어, 내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는 미국의 팝 컬처와 수많은 레퍼런스들을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뮤지컬을 즐기기 때문에, 나는 다른 영화의 대사로 인용된 'Don't rain on my parade'라는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를(뮤지컬 <퍼니 걸>에 나오는 노래 제목이다)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한 분야의 '덕후'라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분야의 이해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뮤지컬을 깊이 파고들기 때문에 나는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의 작은 극장에서 어떤 실험적인 작품을 올리고 있는지도 알 수 있고, 그 작품에 대해 배우고 감상할 수 있고, 작품이 사회문화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고찰해 볼 수도 있다. '덕질'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더 깊이, 더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데에는 용기와 이타심이 필요하다. 열정과 체력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덕질'을 하기로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그만큼 나를 불태울 열정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덕질'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 내게 열광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가 있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는 오늘도 '덕질'로 인해 행복하고, '덕질'로 인해 더 성장하고 있다.



/

2023년 1월 25일,

식탁에 쪼그려 앉아서 에어프라이어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ktphotography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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