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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26. 2023

[D-340] 사랑이란 무엇인가

26번째 글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단 한 번도 다른 누군가를 대상으로 깊은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없다. 가족, 친구,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이나 배우, 가수 등을 좋아하는 것 말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런 깊은 사랑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들은 모두 문학 작품이나 영화, 노래에서 배운 것들이다. 그렇다, 나는 사랑을 글로 배웠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저 짐작밖에는 해 볼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셰익스피어에 따르면 사랑은 죽고자 하는 마음을 막아서는 것이다. 죽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홀로 내버려 두게 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것에 싫증이 나고 모든 비극적이고 잘못된 것들에 질려버려서 죽고 싶다가도, 차마 사랑을 두고 갈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최승자 시인도 사랑은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오히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손드하임의 뮤지컬 <컴퍼니(Company)>에서 묘사하는 사랑도 비슷하다. 사랑은 나를 살아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 뮤지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 'Being Alive'에서 주인공 바비는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게 사랑을 가득 밀어 넣는 사람,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이는 사람, 내가 힘든 일을 이겨내도록 하는 사람, 나만큼이나 살아있다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채 언제나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손드하임의 뮤지컬 <패션(Passion)>에서는 'Loving You'라는 노래를 통해 사랑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선택한 일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도, 그다지 즐거운 일도 아니지만 그 사랑은 삶의 목적이 된다고.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긴다고 말이다.


때로 사랑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나 보다. 브레히트는 사랑으로 인해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내가 빗방울에 맞아서 죽으면 큰일이니까. 셰익스피어도 '사랑이 깊을 때는 작은 염려도 두려움이 된다'라고 <햄릿>에서 이야기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는 사랑을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묘사한다. 아주 강력하고 관찰이 가능한 것.


넷플릭스 영화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에서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에 대한 인상적인 비교가 나온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그러셨죠. '그래서 좋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거야.'라고. 그 사람이 가진 자질 때문에 좋아하는 거고, 그 사람이 가진 자질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거라고요."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 <오리지널 씬(Original Sin)>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랑은 그 사람에게 계속 주고만 싶은 것이고, 욕정은 그 사람에게 계속 받고만 싶은 것"이라고. 기가 막히게 절절한 사랑 고백도 나온다. "당신을 사랑해요. 내가 아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의 좋은 면과 나쁜 면 전부를, 좋은 상황에서건 나쁜 상황에서건 상관없이."


영화 <야연>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도 있다. "당신이 준 잔을 내가 어찌 거절하겠소." 사랑은 독이 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잔을 들어 마시는 일이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나를 내버릴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위고는 그랑테르가 앙졸라스에게 바치는 맹목적인 숭배와 같은 사랑을 두고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우리를 끌어당긴다'라고 썼다. 마치 보색의 법칙처럼, 눈먼 사람은 햇빛을 사랑하게 되고, 두꺼비는 하늘을 나는 새를 사랑하게 되고, 회의주의자는 신념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성복 시인에 따르면 사랑은 어느새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따라 돌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그 사람이 떠나가도 돌 속에 있는 일이다. 또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는 사람을 갖게 되는 일이다.


사랑에 대해서는 루미를 빼놓을 수 없다. 루미의 사랑은 절박하다. 루미의 사랑은 고통이고 괴로움이고 부서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건강인들 이 질병(사랑)보다 아름다울까!"라고. 루미의 사랑은 마음을 활짝 열어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심장을 부수는 과정이다. 가시에 찔려 가면서 장미 정원을 거니는 일이고, 시작도 끝도 없고 깊이도 모르는 물 속으로 잠겨 드는 일이다. 루미의 사랑은 이성도 지성도 없고, 표현도 불가능하고, 어떠한 말도 필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 안에서 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침내 하나가 되는 일이다. 모든 유한을 넘어서서 영원에 가 닿는 일이다.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다만 엿볼 뿐이다.



/

2023년 1월 26일,

책상에 앉아서 고독과 고요를 즐기며.



*커버: Image by Thomas Ulrich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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