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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27. 2023

[D-339] 나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결점

27번째 글

어떤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면 즐거운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와 밥을 먹으러 간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면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영화에 대해 검색을 하기 시작한다. 감독이나 배우나 숨겨진 은유나 해석에 대해서. 그리고 나는 100% 후자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데에서부터 본격적인 감상이 시작된다. 


물론 영화마다 이 '감상'의 정도와 시간은 다르다. 어떤 영화는 보고 나오자마자 흠뻑 젖은 것처럼 빠져들어서 몇 달, 몇 년을 곱씹게 되고, 어떤 영화는 며칠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영화에 빠져드는 기준은 딱히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배우, 좋아하는 스타일은 있지만 이 조건들이 모두 충족된다고 해서 그 영화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를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그 영화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치 날벼락을 맞는 것처럼 찾아온다. 왜 좋아하는지 이유도 알 수 없지만 너무나도 내게 큰 감흥을 남기게 되는 영화들이 종종 생겨난다.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성격이나 내가 좋아하는 외모는 있다. 하지만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성격, 외모 취향에 들어맞더라도 별 감흥이 없는 경우가 있고 전혀 내가 좋아하던 스타일이 아닌데도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나를 끌어당기는 영화/캐릭터의 결정적인 매력은 대부분 그 영화/캐릭터의 부족한 부분에게서 나온다. 캐릭터로 예를 들면, 어떤 캐릭터에게 처음 눈길이 가게 되는 계기는 그 캐릭터의 멋진 점, 뛰어난 점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캐릭터에게 결정적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순간은 그 캐릭터가 인간적인 결점을 보여줄 때다. 캐릭터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말이다. 차갑고 냉철한 캐릭터가 뿌리 깊은 열등감을 보여줄 때. 직업적으로는 아주 프로페셔널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인간관계에는 서투를 때. 늘 밝고 다정하고 쾌활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속으로는 아주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세계관 최고의 검객이라는 캐릭터가 사실 길눈이 어두워서 한참 동안 헤매며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줄 때. 이런 캐릭터의 '못난' 부분들을 우리는 사랑하게 된다. 그 '못난' 부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못난' 부분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부분들은 바로 이 '못난' 부분인 것 같다. 왜, 사람 냄새가 난다는 표현도 있지 않나. 이런 사람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서로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우리는 못났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에서 아름다움을 찾게 된다. 이 결점들, 이 불완전함이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모두 완벽하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우리가 모두 완벽하다면 나와 너는 다른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어려움이나 인간미도 없을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낸 플라스틱 접시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손으로 엉성하게 빚어 구워낸 도자기 그릇 같은 존재다. 약간은 찌그러지고, 약간은 기울어지고, 약간은 우툴두툴하고, 약간은 뭉그러진 존재들. 어느 한 부분은 꼭 티가 섞여 들어간 존재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불완전하고 결점투성이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다 다른 사람이 된다. 개성으로 가득하고 매력으로 가득한 존재가 된다. 서로의 다른 점과 같은 점들을 찾을 수 있게 되고, 그 점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수공예품을 나란히 전시해 놓으면 제각기 다른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어 더 아름답게 보이듯이 이 세상도 결점을 가진 존재들이 모여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결점투성이고, 불완전하며, 못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사랑한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고 더 재미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나를, 나는 무척이나 사랑한다.



/

2023년 1월 27일,

책상에 앉아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Han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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