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Jan 28. 2023

[D-338] 야심 찬 결심으로 주말을 시작하며

28번째 글

어젯밤에 나는 이번 주말을 알차게 잘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12시가 되기 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할 일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한참을 그대로 방치해 둔 책장을 정리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버릴 책은 좀 버리고, 중구난방으로 꽂혀 있는 책들을 좀 정리해서 순서대로 꽂아 놓는 큰 숙제를 1월이 가기 전에 끝내고 싶어서였다. 또 주중에 일을 하고 글을 쓰느라 문화생활을 거의 하지 못한 만큼, 극장에도 가고 책도 읽고 넷플릭스도 보고 싶었다. 또 요즘 들어 부쩍 수공예에 관심이 생겨서 지난번에 사 둔 자수 키트와 비즈도 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요즘 에세이 위주로 글쓰기를 하느라 거의 손을 놓고 있었던 소설과 칼럼도 좀 다시 건드려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이렇게 할 일이 아주 많아서, 나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제 계획한 할 일 리스트들을 하나씩 해치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야심 찬 계획의 시작 부분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오늘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아니면 피곤해서 그런지 요즘 주말만 되면 자꾸 늦잠을 자게 된다. 10시가 넘어서 눈을 떴기 때문에 오전에 하려고 계획했던 자수를 할 시간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침대에서 밍기적거렸다.


계획을 빡빡하게 세우는 것의 단점은, 그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게 되면 의지를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어차피 계획한 대로 해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힘이 빠진다. 조금 여유를 두고 계획을 세우면 늦잠을 잤어도 편안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씩 시작하면 되는데, 빡빡하게 세워 두면 늦잠을 잔 순간 이미 그날 계획한 일들을 다 해내지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허탈해지기 때문이다. 어제 계획을 세울 때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조금 무리하게 세워 버렸다. 그래서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나자 의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예전에는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융통성이 부족한 사람이었고 원칙대로 하는 사람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MBTI로 치면 극 J인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계획이 틀어지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그래서 틀어질 것을 대비해서 플랜 B, 플랜 C를 다 세워 놓기도 했었다. 그러면 원래 계획대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또 다른 계획대로는 진행될 테고, 스트레스를 조금 덜 받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융통성과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모든 일이 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서 그럴 수도 있고, 나를 내려놓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 법을 조금 배워서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내가 예전처럼 계획을 착착 다 세우기에는 너무 피곤하고 지쳐 버려서 그럴 수도 있고. 체력이 부족해서.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예전처럼 계획이 틀어졌다고 해서 그날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 이불속에서 따뜻함을 즐기고 잃어버린 의지를 조금씩 축적했다. 30분 정도 지나서 의지가 생기자 침대에서 나와서 늦은 아침을 먹고, 씻고,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책장 앞에 앉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약간 막막해지길래 다시 방에서 나와서 책장 정리는 오후에 하기로 미뤄두고 노트북을 열었다. 쓰고 싶었던 글을 좀 쓰고, 계획도 수정해서 좀 적어 두고, 지금 이렇게 오늘의 에세이도 썼다. 이 글을 다 쓴 후에는 간식으로 과일을 먹고 책장 정리를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하려던 일들을 해치우며 리스트에서 지워 나갈 것이다. 이번 주말을 알차게 보내겠다는 야심 찬 결심을, 하지만 이 결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서 말이다.



/

2023년 1월 28일,

소파에 엎드려서 보사노바 연주곡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LEEROY Agency from Pixabay

작가의 이전글 [D-339] 나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결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