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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29. 2023

[D-337] 만약 인생이 뮤지컬이라면

29번째 글

만약 인생이 뮤지컬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인생이 훨씬 단순해지고 즐거워질 거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고민이 있을 때는 그 고민에 대해 노래를 한 곡 부르면 고민이 끝나 있을 거고, 누군가와 싸운다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노래나 춤으로 배틀을 벌이게 될 테니까. 그 곡이 끝나면 이 싸움도 어떻게든 끝나 있을 거고. 또 사랑에 빠지는 것도 5분 정도 같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힘들고 지칠 때는 누군가 날 위로해 주는 노래를 부를 거고, 그 노래가 끝나면 다시 의지를 찾게 될 것이다. 그리워하는 대상이나,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 노래로 고백해서 쉽게 진심을 전달할 수가 있다. 피곤한 출근길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월요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합창 후렴구를 부르면서 즐겁게 회사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뮤지컬 속 고민과 사건과 해결방식들이 이렇게 단순한 이유는 뮤지컬이 겨우 2시간짜리 작품이기 때문이다. 2시간 안에 모든 기승전결을 해결해야 하다 보니, 그리고 그걸 대사보다 훨씬 느린 노래로 진행해야 하다 보니 단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뮤지컬 특유의 쇼적인 감성이나 연출, 극장이라는 공간의 특성도 한몫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런 시간적 제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일생을 대강 80년 정도라고 치고, 이 80년을 뮤지컬의 2시간 동안으로 압축해서 넣는다고 치자. 그러면 뮤지컬에서의 5분은 인생에서는 대략 3년이 좀 넘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인생으로 치환해 보면, 뮤지컬에서 노래 한 곡을 부르는 딱 5분 동안 고민과 해결이 모두 끝난다고 해도, 실제로는 3년이나 걸린다는 뜻이다. 3년이면 고민이 시작되고, 끊임없이 괴로워하며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 발버둥 치고, 마침내 해결책을 찾아내기에 그럭저럭 적당한 시간인 것 같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뮤지컬에서는 5분 노래할 동안 사랑에 빠져서 약혼하는 것까지 다 하는데, 3년 연애하고 약혼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말이 된다.


또 뮤지컬은 대체로 공식이 있다. 모든 뮤지컬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뮤지컬들이 시작 부분에 "I Want" song이라고 불리는 노래가 등장한다. 주인공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현재 해결하고 싶은 문제들은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노래이다. 그리고 많은 뮤지컬들은 끝나기 15분 전쯤에 11 o'clock song이라고 불리는 노래가 나오면서 클라이막스를 맞곤 한다. 이 노래에서 주인공은 어떤 깨달음을 얻거나, 고민하던 내용에 대해 결론을 짓거나, 아주 결정적인 감정 및 상황의 변화를 맞게 된다.


이런 뮤지컬의 공식을 인생으로 치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인생을 시작하면서 10대~20대 즈음에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 헤매게 되고, 나름대로의 답을 써 나가면서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가 언젠가 깨달음을 얻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물론 갑작스럽게 한 순간에 찾아오는 깨달음은 아닐 테고 노래를 부르는 5분 정도, 그러니까 한 3년 정도에 걸쳐서 서서히 깨닫게 될 것이다. 뮤지컬이 끝나기 대략 15분 전이라고 한다면 내가 70살 정도가 될 때 이 깨달음이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직 수십 년을 더 살아야 11 o'clock song 단계에 다다를 테니까. 내 인생이 뮤지컬이라면, 나는 이제 고작 "I Want" song을 부르고 있는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고민이 많은 것도 당연하고, 막막해 보이는 것도 당연하고, 답답한 것도 당연하다. 조급해하지 말고 열심히 내게 주어진 삶을 살다 보면 언젠가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에 도달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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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9일,

소파에 앉아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Andreas Glöckne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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