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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Dec 06. 2023

[D-26] 나를 혼내는 나

340번째 글

나는 혼나는 게 싫다. 누군들 혼나는 걸 좋아하겠느냐마는, 나는 유독 혼나는 걸 아주 싫어하는 편이다. 내가 하는 일들이 대부분 혼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라는 생각이 가끔 들 정도로. 나는 꾸중을 듣지 않기 위해서 모든 걸 다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노력하고,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책 잡힐 일을 아예 없애려고 노력하고, 싫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뭐든지 잘하려고 애를 쓴다. 그 정도로 '혼나지 않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동기이다.


내가 그렇게 '혼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가 혼나는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싫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누군가 내가 한 일에 불만족했거나 나에게 화가 나서, 그리고 그 수준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라서, 내게 말까지 꺼내야 했다는 그 상황이 너무 싫다. 내가 그 정도로 뭔가를 잘 해내지 못했다는 걸 견딜 수가 없다. 내가 그 정도로 다른 사람을 실망시켰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혼나는 게 싫다. 그 상황에는 나에 대한 실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은 누구도 나를 혼내지 않았고 누구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나 스스로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 혼자서 나에게 실망하는 경우. 그래서 나를 마구 혼내는 경우. '너 이거밖에 안 돼?' '왜 이것밖에 못 해?' '고작 이 정도였단 말이야?' '왜 더 잘하지 못해?' '이렇게 해서 어쩌려는 거야?' '대체 왜 그 모양이야?' 나는 이런 식으로 나를 혼낸다.


내가 혼나는 걸 싫어한다면, 나 자신에게 혼나는 것도 싫어해야 옳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내게 실망하고 끊임없이 나를 나무라고 끊임없이 내게 책임을 지운다. 가끔은 내가 그러는 걸 즐기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리라고 이미 기대하고 있어서, 실제로 내게 실망하는 상황이 오니까 그 기대가 충족되는 거다. 그래서 아주 안심하면서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나 자신을 혼내면서 만족감을 얻는 거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나에게 자주 실망하고, 나를 자주 꾸짖는다.


나는 나를 덜 혼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뭐든지 완벽하게 잘 해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내게 기대를 하고 있고, 언제나 내가 실망스러울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모든 걸 아무리 잘 해낸다고 해도 여전히 내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나를 덜 혼내기 위해서는 내가 뭐든지 완벽하게 잘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실수투성이고, 완벽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고 나면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하더라도 혼을 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내가 실수를 했구나,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두 번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 경험을 양분 삼아야지, 그래서 더 나아진 내가 되어야지, 그런 생각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왜 이것밖에 못 해?'가 아니라 '많은 걸 배웠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꾸지람이 아니라 반성과 성찰에서 그칠 수 있을 거고,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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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6일,
버스에 앉아 진동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Paul Teyse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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