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Dec 07. 2023

[D-25] 보이는 나와 실제의 나

341번째 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 누구나 나에 대해서 의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의견이 언제나 사실인 것은 아니다.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은 언제나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에는 실제의 내가 일부만 반영되어 있다. 나를 보여주기 위해 화면에 투영시킨다면 언제나 왜곡이 생기고, 언제나 잃어버리는 부분이 생긴다.


이건 내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지하철에 앉아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나는 자리에 앉아서 주변 사람들을 보고 있다. 첫 번째로 보이는 사람은 단발머리를 하고 운동복을 입고 있다. 나는 자연스레 그 사람이 단발로 자른 머리스타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좋아하는 머리스타일로 꾸미곤 하니까.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은 단발머리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긴 머리를 좋아하고 평생 긴 머리로 살아왔지만 머릿결이 너무 상해서 어쩔 수 없이 잘라야 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단발머리라는 사실은 그 사람에 대한 정보이지만, 그 사람의 선호나 취향에 대한 명확한 정보까지는 주지 못한다. 운동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자연스레 그 사람이 운동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생각할 거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일 거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저 추측일 뿐이다. 그 사람은 하필 그날만 운동복을 입었던 것일 수도 있다. 평소에는 청바지와 셔츠를 즐겨 입지만 그날은 어떤 이유 때문에 운동복을 입고 나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이 운동복을 입고 나온 처음이자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운동복을 입고 있지만 헬스장에 가는 길이 아닐 수도 있고, 단 한 번도 헬스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운동복을 입고 있다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실제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예전만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 사람들의 생각이 언제나 사실인 것은 아니니까. 나에 대해 의견을 갖는 것은 그 사람들의 자유다. 나는 그 부분을 건드릴 생각은 전혀 없다.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말라고 화를 내지도, 나를 제대로 좀 보라고 윽박지르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단지 혼자 생각할 것이다. 그 의견이 실제로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신경 쓰지 않기로 한 대신에, 나는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를 더 신경 쓰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지 내가 떳떳하고 내가 실제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상관없다. 물론 여전히 상처받고 여전히 속상해하겠지만, 예전만큼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에 전전긍긍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나를 투영해서 보여주는 화면에 적게 신경 쓰게 되자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더 많이 투영해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다른 사람은 절대로 볼 수 없도록 숨기고 지우려 했던 나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나를 보다 진실되게 보여주었을 때, 그걸 본 사람들이 나를 배척하거나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자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내 진짜 모습을 보고 싫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견들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경험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래서 점차 나는 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더 많이, 더 투명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예전보다 진실되게, 예전보다 숨김없이, 예전보다 더 실제의 나에 가까운 모습을, 예전보다 더 자신 있게.



/
2023년 12월 7일,
소파에 앉아 옅은 바람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Mark Olsen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26] 나를 혼내는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