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번째 글
철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금속 중 하나이다. 철은 비교적 흔하고 값도 싸고 단단해서 여러 가지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높이 솟은 건물이나 거대한 다리에서부터 손에 쥔 작은 핫팩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이렇게 유용한 철에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바로 부식이 잘 된다는 점이다. 철은 쉽게 녹슬고, 녹슨 철은 쉽게 부스러지기 때문에 철로 만든 물건들은 따로 처리를 하지 않으면 오래 쓰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이 녹슬지 않도록 특수한 처리를 해서 사용한다. 표면에 코팅을 한다거나 페인트를 바른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렇게 표면에 뭔가를 하는 이유는 철이 녹스는 데에 산소와 물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철은 약간의 산소나 약간의 습기만 있어도 금세 반응해서 녹슬어 버리기 때문에, 철 표면에 기름, 페인트 등을 발라서 산소와 물이 철과 만나지 못하게 하면 녹이 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아주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 나는 때때로 부식되고 녹슬고 바스러지는 금속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 자신이 녹슨 철처럼, 조금씩 조금씩 녹이 슬어 어느 순간 무너져내리는 철근 덩어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떨 때는 내 몸이 그렇게 녹슬었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내 마음이 녹이 슬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아주 반응성이 좋은 금속 같다고 생각한다. 그 말인즉 내가 아주 녹슬기 쉬운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너무 반응성이 좋아서 조금만 건드려도 순식간에 부식되어 버리고 마는 그런 금속처럼. 누군가는 금이나 은처럼 오랫동안 변함없이 빛나는데, 나는 생각도 많고 상처도 잘 받고 예민한 사람이라 쉽게 빛이 바래고 쉽게 녹이 슬어 버리고 만다.
나는 녹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녹슬기 쉽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녹슬기 쉬운 환경에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철의 부식을 막기 위해서 산소와 물을 차단하듯이, 나는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녹이 스는 건 내가 타고난 성질이니 어쩔 수 없지만, 나를 어떤 환경에 놔둘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로 태어난 나는 하루아침에 금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내 표면에 기름칠이나 페인트칠을 해볼 수도 있고, 흡습제를 사용할 수도 있고, 진공 상태의 방을 찾아갈 수도 있다. 물속에 빠져 있어서 도저히 물은 피할 수가 없다면, 이 물에서 산소를 제거해 보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둘 중 하나라도 줄어들면 부식을 늦출 수 있으니까.
내가 녹슬기 쉬운 사람인가? 그걸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다. 무엇이 나를 녹슬게 하는가? 그걸 찾아내는 것이 두 번째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나를 녹슬게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면 조금 덜 녹슬 수 있을 것이다. 약간 녹이 슬었더라도 완전히 바스러지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다시 물에 빠지고 산소와 접촉해야 하더라도 오늘 나를 건지고 잘 말리고 기름칠을 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이 부식을 늦출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