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예언자 - 칼릴 지브란

2025년 독서 챌린지, 첫 번째 책

by 슬로

칼릴 지브란을 처음 제대로 접한 건 책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였다. 지브란의 소설 <부러진 날개>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부러진 날개(Broken Wings)>가 나와 지브란의 첫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도 소소한 만남들은 있었다. SNS에 돌아다니는 짧은 문장이나 다른 사람들이 인용하는 명언으로 지브란을 만났던 적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문장으로 작가에 대해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지브란은 한동안 내게 '이름만 아는 유명 작가' 정도의 위치였다. 그리고 2018년, 영국에서 뮤지컬 <부러진 날개>의 초연 소식을 듣고 난 이후 '이제 한번 책을 읽어 볼 때가 된 것 같은 작가'가 되었다.


서점에 가서 <부러진 날개>와 <예언자>가 한 권으로 묶여 있는 책을 사 온 것도 그때였다. 당시에는 <부러진 날개>에 더 집중했었기 때문에 <예언자>는 가볍게 읽고 넘어갔었다. 그리고 이번에 챌린지를 시작하면서 <예언자>를 다시 펼치게 되었다.


뮤지컬을 계기로 첫 만남을 가져서인지 지브란의 문장들을 읽다 보면 마치 노래 가사처럼 읽힐 때가 많다. 문장 자체에 리듬과 멜로디가 붙어 있는 느낌이랄까. 그중에서도 <예언자>는 유독 그런 느낌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글이 운문 형식인 데다가 내용도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읽는 내내 머릿속으로 음을 붙여가며 읽었다. 다 읽고 나자 마치 찬송가를 부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점이 특별했다.


책장을 덮은 뒤 이런 생각을 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글을 읽어도 이렇게 음악처럼 느껴진다면 원어로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다행히 <예언자>는 아랍어로 쓰인 <부러진 날개>와는 달리 영어로 쓴 책이라 원어로 읽는 것이 가능하다. 내용이 짧아서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조만간 원어로도 한번 읽어 볼 생각이다. 원어로 읽으면 또 어떤 감상을 느낄지 궁금하다.


<예언자>를 읽는 동안 나는 종종 루미를 떠올렸다. 책 속의 알 무스타파가 이야기하는 철학들은 루미의 시를 통해 접한 것들과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 사랑에 대한 내용들이 그랬다. 사랑은 슬픔과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 슬픔과 고통에 기꺼이 즐겁게 몸을 내맡기는 것이라는 내용은 루미의 시들을 관통하는 정서와 닮아 있다. 또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침묵한다'라는 개념도 루미의 시에서 자주 본 것들이었는데 <예언자>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다. 다른 여러 철학의 영향도 많이 받았지만 전반적으로 루미와 수피즘의 영향도 어느 정도 깔려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내가 집중하는 부분이 처음 <예언자>를 읽었을 때와는 달라졌다는 거였다. <예언자>는 알 무스타파라는 예언자가 오르팰리스 성에서 12년을 머무른 후, 고향으로 가는 배에 오르기 직전의 이야기다. 총 2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은 배가 도착하는 내용, 2장부터 27장까지는 알 무스타파가 오르팰리스 성의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사랑, 기쁨과 슬픔, 자유, 종교, 죽음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내용, 마지막 28장은 이별하고 배에 올라 떠나는 내용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2장부터 27장까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 무스타파의 설교에 더 집중했었다. 책 속에서 여러 주제들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더 관심이 갔고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그 주제들에 대해 고민하며 내 생각을 정리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1장과 28장에 더 집중하면서 읽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알 무스타파가 다가오는 배를 바라보며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나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들이 더 가슴에 깊이 남았다. 책을 읽은 뒤에도 뱃머리에 올라 바다로 나아가는 알 무스타파의 모습을 거듭 떠올렸다.


알 무스타파는 배에 올라 고향으로 가기 전,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고 말하며 "잠깐 바람이 일 때 짧은 휴식의 순간이 찾아오면, 그러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라는 말을 남긴다. 이 말 때문에 나는 알 무스타파가 말하는 고향은 곧 죽음이라고 느꼈다. 배를 타고 오르팰리스 성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의 은유가 아닐지.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들의 배를 타고 중간계를 떠나는 프로도처럼. 이렇게 이해하자 책의 첫머리에서 알 무스타파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이 더 긴밀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배에 오를 때의 모습은 과연 어떨지, 떠나기 직전 내가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깨달은 모든 것들을 이야기한다면 과연 어떤 내용일지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내 버전의 <예언자>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를 말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이 책을 다시 펼쳐 본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상을 받게 될까. <예언자>는 아무래도 주기적으로 집어 들게 될 것 같다. 내 버전의 <예언자> 내용을 고민하기 위해서라도.




*커버: Unsplash의 Christian Ha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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