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독서 챌린지, 두 번째 책
'바이킹'이라는 용어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야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야만'의 이미지와 비슷할 것이다. 칼과 방패로 무장하고 거친 옷과 풀어헤친 머리를 한 채로 나타나 무자비하고 잔혹한 학살을 저지르는 전사의 이미지. 그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이킹'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미디어에 바이킹이 등장할 때 거의 예외 없이 그런 식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그러나 라스 브라운워스의 책 <바다의 늑대: 바이킹의 역사>에서 본 바이킹은 단순히 그런 이미지 이상이었다. 바이킹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무시무시한 침략자의 모습도 갖고 있었지만, 동시에 상인이기도 했고 탐험가이기도 했고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들은 중세 유럽의 기독교 사회 구성원들에 비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종교나 이상과 같은 추상적인 이유가 아닌 개인의 이익이라는 구체적인 목표 아래에서 필요에 따라 계산적으로 움직였다. 이런 점들 때문에 중세의 바이킹은 오히려 현대인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바다의 늑대: 바이킹의 역사>를 통해 갖게 된 또 다른 인식의 전환은 바이킹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것이다. 나는 기존에는 바이킹이 잠시 동안 약탈을 일삼았을 뿐, 문명을 이룩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문명에 흡수되어 사라졌다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이킹은 북유럽은 물론 영국과 아일랜드,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비잔틴 제국, 그리고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이 아직도 특정한 '바이킹 국가'의 형태로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문명에 감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바이킹들의 놀라운 적응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영국에서는 영국인이,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인이,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인이 되어갔다. 그들은 단지 스쳐가는 외부인이 아니었다. 수많은 나라들의 뿌리와 줄기에 바이킹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큰 영향을 미친 바이킹을 과연 '야만'이라고 묶어 버리는 건 너무나도 성의 없는 평가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느 역사나 남성 중심적으로 기록되고 인식되어 왔지만, 그동안 바이킹은 내게 특히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아마도 '야만'과 이어지는 남성 '전사'의 이미지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바다의 늑대: 바이킹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바이킹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생각 깊은 아우드'는 남편과 아들이 죽자 사람들을 모아 직접 선장 역할을 하면서 배를 타고 아이슬란드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생각 깊은 아우드'는 땅을 소유하고, 회의를 주재하고, 존경받는 씨족장의 역할을 했다. 빈란드로 탐험을 떠난 '프레이디스'는 원주민의 공격에 우왕좌왕하는 바이킹들을 결집시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정착지를 건설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키예프의 '올가'는 유능한 지도자로서 권력을 강화하고 수많은 제도들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 여러 부족들을 정치적으로 통합했으며 침략자를 물리쳤다. 프랑스의 앙리 1세와 결혼한 키예프 출신의 '황후 안나'는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펼쳤고, 글을 쓸 줄 몰랐던 대다수의 프랑스 귀족들과는 달리 학식이 높았다. 덴마크의 왕비 '티라'는 독일인의 습격에 맞서 덴마크의 군대를 이끌었다. 모두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종종 등장하는 이런 바이킹 여성들의 이야기는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내용 중 하나였다.
전반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비록 몇몇 부분에서 오타를 발견하긴 했지만 내용 자체는 쉽게 읽히는 편이었다. 다만 린디스판 습격이나 파리 포위 등 유명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별 설명 없이 당연히 독자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북유럽신화와 게르만 문화에 대해 공부했던 적이 있어서 기본적인 지식들은 갖고 있었던 편이라 괜찮았는데, 바이킹에 대해 아예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는 약간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쉬웠던 점 한 가지는 이름들이 너무 헷갈린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하랄'들이 있다! 너무 많은 동명이인들이 있고 너무 많은 이름들이 '애설'로 시작한다(애설울프, 애설스탠, 애설레드...).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부록의 인명사전을 뒤져봐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인명사전을 봐도 누가 누구의 아들인지 정도만 간략하게 나와 있어서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다시 파악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연표나 왕들의 가계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맨 앞의 지도나 뒷장의 부록은 정말 유용했는데 연표도 있었으면 훨씬 더 쉽게 읽혔을 것 같다. 책의 구성도 침략자/탐험가/교역자/북유럽 본국으로 나뉘어 각각의 주제에 맞는 내용만 소개하는 형식이라, 연표가 있었다면 8세기 경 이 '침략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탐험가'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비교하면서 시대별로 순차적인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책을 다 읽고 난 뒤, 넷플릭스에 들어가서 드라마 <바이킹스>를 찜한 콘텐츠 목록에 올려 두었다. 예전에 시즌 1 정도까지는 봤던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다시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책에서 본 반가운 이름들을 드라마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된다.
*커버: Unsplash의 Adam 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