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독서 챌린지, 네 번째 책
"어렵다!" 이 책에 대해 가장 간결하게 감상을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아니고 낯선 이론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닌데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를 않는다. 페이지를 넘겼다가도 다시 돌아오기도 했었고 문장 하나를 두고 오래 생각해야 할 때도 있었다.
<과학혁명의 구조>가 쉽게 읽히지 않았던 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이유는 번역투였다. 전체적으로 영어 문장을 한글로 직역해 놓은 듯한 느낌이라 어색했고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단어를 써서 번역한 것도 이해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차라리 영어로 읽었다면 이해하기 더 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이 논문 형식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대중과학서가 아니라 전문 서적이고, 이미 독자들이 어느 정도 관련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런 글을 너무 오랜만에 읽은 탓에 다소 낯설었고 어려웠다.
이 책이 논문 형식이라는 점은 곳곳에 달린 주석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의 주석은 본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의 출처를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주석이 내용 이해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만약 이 책이 일반 대중을 겨냥한 책이라면 본문의 내용을 부연설명하는 형식의 주석이 이해를 보다 쉽게 만들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열역학은 19세기 두 기존 물리과학 이론의 충돌로부터 탄생하게 되었고, 양자역학은 흑체 복사, 비열, 그리고 광전 효과를 둘러싼 갖가지 난제들로부터 탄생했다. 4)
일반 과학서라면 4)번 주석에서 '두 기존 물리과학 이론의 충돌'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었을 것이고, 흑체 목사, 비열, 광전 효과의 개념을 간략히 소개하고 이 개념들을 둘러싼 난제가 왜 양자역학을 탄생시켰는지를 해설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대신 '열역학에 대해서는 Silvanus P. Thompson, Life of William Thomson Baron Kelvin of Largs (London, 2010), I, 266-281 참조. 양자 이론에 대해서는 Fritz Reiche, The Quantum Theory, H. S. Hatfield and H. L. Brose 역 (London, 1922), ⅰ-ⅱ장 참조'라고 주석을 단다. 더 알아보고 싶을 때는 참고할 수 있지만 문장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주석이다.
이런 책의 형식 때문에 과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읽기엔 적절하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대학생 때 과학을, 그중에서도 물리와 화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전문 용어들과 개념들, 과학자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그래서 주석이 없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열역학이 어떤 학문인지, 흑체 복사, 비열, 광전 효과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용어들을 아주 낯설게 여기는 사람은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고자 나는 내게 이 책을 선물한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사회학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는 지인은 이 책을 내게 선물하면서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책'이고 '과학자라면 필수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이 책을 다 읽었다는 뜻일 텐데, 지인이 책 속의 과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내용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궁금했다. 지인의 대답은 간단했다. "넘어갔지." 이해가 안 되는 전문용어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고 지인은 알려주었다.
사실 <과학혁명의 구조>가 하고자 하는 말은 아주 명확하다. 그래프 하나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고 명료하다. 그러나 이 책은 설득에 공을 들인다. 한 페이지가 아니라 300페이지 분량으로, 과학사의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이 책에 등장하는 전문지식들은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것일 뿐, 그 지식들을 하나하나 상세히 이해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 사례들의 의미를 자세히 알고 있다면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 의미를 잘 몰라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후기는 "어렵다!"로 시작했지만 "괜찮다!"라는 말로 끝맺고 싶다. 물론 번역은 엉망이고 읽기 어려운 책인 것도 맞다. 그러나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지인의 말처럼 모든 과학자가 필수로 읽어야 하는 책인 것도 맞는 것 같고. 이 책은 과학에 대한 책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인식, 과학자 공동체, 그리고 과학을 하는 태도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과학자 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어봤으면 한다.
*커버: Unsplash의 NA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