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독서 챌린지, 다섯 번째 책
이 책을 다시 집어 들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너무 길지 않은 문학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음에 읽을 책을 고르고 있는데, 책장에서 소네트 시집이 눈에 띄어 다시 펼치게 된 것이다. 책을 뽑아 들면서 나는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처음 읽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나는 약간 실망을 했었던 것 같다. 몇몇 문장들이 인상 깊기는 했지만,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은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지나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지금은 그의 시들이 내게 어떻게 다가올지를 궁금해하면서 첫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결과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여전히'다. 여전히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내게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사랑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글이라고들 하는데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로 그가 말하는 것들이 사랑이 맞기는 한가?'라는 의문마저 들 정도다.
이런 생각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상대방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데에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네트의 전반부는 'Fair Youth'라는 남성, 후반부는 'Dark Lady'라는 여성에 대한 내용인데, 'Fair Youth'에 바치는 시들은 거의 대부분 그의 청춘과 외모를 칭송하는 내용이다. 그는 상대방의 아름다움이 젊음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하며, 상대방이 나이가 들어 그 아름다움이 사라질까 전전긍긍하고, 늙으면 추해질 거라며 슬퍼한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빨리 아이를 낳으라고 애원하기까지 한다. 상대방이 늙어서 추해지더라도 그 아이가 아름다움을 물려받아야 하기에.
이게 과연 사랑일까? 셰익스피어는 시를 통해 열렬한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들은 결국 상대방의 젊고 아름다운 외면뿐이다. 그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모른다.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것들(젊음과 아름다움)만을 사랑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셰익스피어의 사랑이 대단히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노래하는 사랑은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받는 사랑이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랑이다.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사랑이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랑이다. 그는 소네트에서 내내 자신이 버림받고 멸시받아도 상대방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결국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셰익스피어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죽어도 그대의 마음을 찾아가려 하지 말라.
찾아갈 생각 없이 나에게 주었으니.
(22번 중)
셰익스피어의 사랑이 이기적이라는 것은 이런 구절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루미를 떠올렸다. 또 다른 사랑의 대가 루미는 과연 뭐라고 했을까. 루미라면 분명 찾아갈 생각 없이 그에게 준 사랑에 대해 노래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와는 정반대로. 둘 다 고통스러운 사랑을 하고 아름다운 시를 썼지만 두 사람이 말하는 사랑은 완벽하게 대비된다. 루미는 상대방의 영혼을 사랑하고 셰익스피어는 상대방의 외모를 사랑한다. 루미는 대가 없이 주는 사랑을 하기를 원하고 셰익스피어는 사랑을 받고자 한다. 루미는 그 무엇도 사랑을 쓸 수 없기에 침묵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시를 통해 사랑을 영원불멸한 것으로 남길 수 있다고 믿는다. 루미는 사랑하는 대상과 합일을 이루고자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상대방과 자신의 구분을 명확히 한다. 루미의 시는 종교적인 색채도 강하게 띠고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시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인간적이다.
물론 루미가 셰익스피어보다 낫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내게는 셰익스피어 소네트보다는 루미의 시구들이 더 울림을 줄 뿐이다. 단순히 취향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아름답지 않다고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도 좋아하는 소네트가 몇 편 있다. 마음에 남는 구절들도 많고 멋지다고 느낀 표현들도 많다. 분명 문학적 가치도 뛰어날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여전히 사랑에 있어서는 나를 설득시키지 못한다. 보답을 바라는 사랑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인간적인 면모들이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사랑이 구질구질해 보인다는 생각을 아직은 떨칠 수가 없다.
언젠가 셰익스피어에게 설득당하는 날이 올까? 그가 노래한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그의 시구들을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까? 그와 같은 사랑을 하는 날이 올까? 그 점이 궁금할 따름이다.
*커버: Unsplash의 Christopher E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