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독서 챌린지, 여섯 번째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펼쳤을 때,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정의에 대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설명을 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그러기에는 정의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복잡하다. 실제로 이 책은 해답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10페이지 정도에만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담겨 있을 뿐, 이 책은 설명하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여러 철학자들의 여러 의견을 제시하고 여러 예시를 보여주며 무엇이 옳은지를 고민해 보게 만드는 책, 그래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책이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주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냈다. 책이 재미가 없었거나 어려워서 그랬던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아주 쉽게 읽혔고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했다. 내가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하루종일 정의에 대해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옳은가?' '나는 왜 이 상황에 반감을 느끼는가?' '내가 이 의견이 옳다고 느끼는 근거는 무엇인가?' 책 속의 예시들을 떠올리며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순간에도 내내 고민했다.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또 트롤리 문제처럼 상상 속의 문제들에 대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작품 속 이야기만큼이나 그 안에 담긴 정의관을 더 주목해서 보게 되었다. <팔콘과 윈터 솔져>를 보면서 나는 '캡틴 아메리카'가 상징하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자문했다. 극중에서 미국인들은 대체로 '캡틴 아메리카'라는 상징적인 존재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한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대변하는 '영웅'이란 곧 그 나라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미덕을 대변하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미덕이란 무엇일까? 아니, 애초에 한 개인이 미덕을 대변할 수 있을까? 그러한 개인은 자신이 대변하는 공동체를 그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걸까?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인 10명을 구하기 위해 외국인 100명을 희생시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은 걸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극중 캐릭터들의 서사보다 이러한 질문들에 더 관심이 갔다.
<트랜스포머 원>을 보면서도 나는 정의에 대해 생각했다. 사이버트론 행성에는 일반 시민인 '코그드'와 하층 계급인 '코그리스'가 존재한다. '코그드'에게 공급할 에너지원을 생산하기 위해 '코그리스'는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 후반부에 이 '코그리스'는 독재자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계급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코그리스'들은 독재자를 몰아내고 모두 '코그드'가 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엔딩 이후 시점에 벌어질 논쟁들을 생각했다. 만약 새 정부가 기존에 '코그드'였던 시민들에게 '코그리스'였던 시민들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한다면, 그것은 공정한 것일까? '코그드'였던 시민들도 독재자에게 속아왔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그동안 '코그리스'들을 착취하며 얻은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삶을 누려왔던 것 역시 분명하다. 이 상황에서 과연 어떤 처분이 공정할까? 어떤 사상에 입각해서 판단을 내려야 할까?
이런 질문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머리 아픈 나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정의에 대해서 400페이지나 되는 글을 읽었는데도 정의가 무엇인지를 더욱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마 이런 질문들을 통해 내 나름대로 정의에 대한 결론을 내리게 되지 않을까. 전에 읽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토머스 쿤은 우리가 교과서에 딸린 연습문제들을 풀어 보면서 정상과학을 체화한다고 주장했었다. 정의에 있어서는 이런 질문들이 연습문제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정의에 대해 더 고민하게끔 만드는 것, 더 많이 더 깊이 더 오래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 그게 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가진 힘이 아닐까.
*커버: Unsplash의 Nathan Duml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