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독서 챌린지, 열일곱 번째 책
올해에만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을 벌써 세 권째 읽었다. 예전에 읽다가 무서워서 그냥 중간에 덮었던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를 다시 읽은 게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결말이나 트릭이 기억이 안 나는 엘러리 퀸 국가명 시리즈들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미국 총 미스터리>와 <스페인 곶 미스터리>까지 6개월 안에 엘러리 퀸을 세 권이나 읽게 된 거다.
그런데 <스페인 곶 미스터리>는 다른 엘러리 퀸 작품들과는 약간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신기할 만큼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전혀 안 나서 완전히 새로운 기분으로 읽었는데, 다른 국가명 시리즈에서는 범인을 잡는 것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 책은 왜 살인을 했는지 범인의 심리에도 초점이 가 있다는 느낌이다. 살해당한 피해자가 정말 나쁜 사람이라는 점이 강조된다는 면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떠오르기도 한다. 범인이 밝혀진 이후에 엘러리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신선했다. 엘러리가 사건을 대할 때 전보다 더 성숙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고나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 내려갔는데 역자 후기에서 내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반가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가지 들었던 생각은 탐정소설의 형식에 대한 것이었다. 탐정소설은 결국 탐정의 추리를 독자가 들어야만 완성되는 장르이다. 그러니까 탐정은 직접적인 대사나 독백으로 자신의 추론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면 탐정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캐릭터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탐정보다는 지적 능력이 조금 떨어져서 일반인에 가까운, 그래서 독자와 비슷한 위치에서 탐정의 말을 듣게 되는 캐릭터. 대표적으로는 홈즈의 왓슨과 같은 캐릭터 말이다. 엘러리 퀸 시리즈에서는 이 역할을 퀸 경감님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스페인 곶 미스터리>는 엘러리가 휴가를 떠난 곳에서 사건이 벌어져서 퀸 경감님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엘러리와 함께 휴가를 떠났다가 사건에 얽히게 되는 판사가 등장해 엘러리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의 이야기를 독자를 대신해서 들어준다.
탐정소설에는 이런 캐릭터가 필요하고, 이런 캐릭터는 필연적으로 탐정과 자주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탐정소설에서는 늘 이런 캐릭터들 간의 케미스트리가 또 다른 재미 포인트인 것 같다. 홈즈와 왓슨이 주고받는 티키타카도 그렇고 엘러리와 퀸 경감님의 관계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퀸 경감님이 엘러리 때문에 답답해하거나 짜증 내는 장면들을 보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데, 내가 느끼는 이런 재미가 결국 탐정소설 특유의 형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엘러리 퀸 국가명 시리즈는 전부 내용이 기억이 날 정도로 읽어 두었다. 다음에 만약 또 추리소설을 읽게 된다면 어떤 책일지 궁금하다. 언제 다시 추리소설을 읽게 될지도 궁금하고.
*커버: Unsplash의 Drew Dizzy Grah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