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독서 챌린지, 스무 번째 책
요즘은 '루미'라고 하면 모두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을 떠올릴 것 같다. 그 영화를 나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나는 여전히 '루미'라고 하면 시인 루미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아마 오래전부터 좋아했어서 그럴 것이다. 한때 열렬히 좋아했던 것은 시간이 지나도 삶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까. 물론 루미가 워낙 유명한 시인이기도 하고.
<나는 다른 대륙에서 온 작은 새>는 루미의 여러 시들을 우화집의 형태로 엮어 놓은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낯익으면서도 새로웠다.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구절들도 있었고, 아예 처음 보는 구절들도 있었고, 어딘지 익숙한 구절의 앞뒤 맥락을 처음 접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낯익으면서도 새로웠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번역 때문이었다. 내 책장에는 루미의 시집이 여러 권 꽂혀 있다. 각자 다른 번역가에 의해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다. 그래서 루미의 시들을 서로 다른 여러 가지의 번역으로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된 거다. 같은 구절을 다른 번역으로 접하는 건 언제나 신기한 일이다. 번역에 따라 이렇게나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영어 책으로 루미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영어로 번역된 구절이 더 익숙한 경우도 있어서 더욱 신기하다.
다음 구절로 한번 예를 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갈대 피리의 노래'라는 제목을 임의로 붙여 놓은 시이다.
갈대 피리가 들려 준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끊어진 존재에 대한 두 개의 이야기.
나는 뿌리에서 잘려 나와 줄곧 이 슬픈 소리를 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사람은 내 노래를 이해할 것입니다.
이 구절은 내게 다음과 같은 번역으로 더 익숙하다.
이별의 괴로움을 부르짖는 갈대의 이야기를 들어라.
갈대밭에서 잘려 나온 나의 슬픔을 모두가 슬퍼한다.
내 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별로 조각조각 난 가슴을 가진 이가 필요하다.
분명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두 번역이 각각 주는 느낌은 너무나도 다르다. 번역이 다를 뿐 원문은 같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괜히 억울한 기분이었다. 내가 페르시아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그래서 원문을 그대로 읽고 원문이 주는 느낌을 곧장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이 서글펐다. 외국 작품을 접할 때마다 맨날 하는 생각이지만, 모든 언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 문화권 속에서 당사자가 되어서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판소리 공연에 갈 때마다 나는 소리꾼이 말하는 것들을 번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문화권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설명이 없어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고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페르시아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문화권에 사는 사람은 루미의 시를 읽으며 그런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평생 미국인으로 살면서 어린 시절부터 슈퍼히어로 코믹스를 접한 사람은 최근 개봉한 <판타스틱4> 같은 영화를 보면서 그런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고. 언어와 문화는 내가 베고 자는 돌 베개이므로.
*커버: Unsplash의 Stavrialena Gontz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