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숨 - 테드 창

2025년 독서 챌린지, 스물한 번째 책

by 슬로

지난 5월, 테드 창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자마자 두 번째 단편집인 <숨>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너무 빨리는 말고,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읽고 싶었다. 테드 창의 이야기들을 전부 읽어 버려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다른 의미로 마음의 준비도 좀 필요했다. 온전히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갖춘 상태에서 <숨>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달 정도 지난 뒤인 7월에 드디어 <숨>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책을 빌려왔다. 그리고 역시나, <숨>을 읽으면서도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느껴졌다. 너무 재밌어서 책장을 넘기기 아까웠고 동시에 모조리 읽어 버리고 싶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써낼 수 있다는 점에 질투가 났고. 그리고 왠지 모르게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어쩌면 강박적으로 느껴질 만큼 소설마다 섬세하게 짜인 세계관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테드 창 특유의 결정론적인 내용 때문일 수도 있고. 어쨌거나 테드 창의 소설들은 감정적인 이야기가 아닌데도 늘 감정 소모를 많이 하게 된다. 몇몇 작품을 읽으면서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래서 좋지만, 그래서 힘들기도 하다.


테드 창의 작품을 모두 읽은 지금,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한 단어를 뽑자면 '자유의지'가 아닐까 싶다. 그의 소설들에는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들이 담겨 있다. 보통 그는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으며,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그저 운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런데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실린 단편들이 냉소적인 느낌을 주는 것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숨>은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껴진다. 비록 우리의 인생에 자유의지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고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선택을 할 수 있고(적어도 그렇다고 믿을 수 있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 이런 점들이 <숨>에 수록된 단편들에는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더 많이 묘사되었다고 느껴진다.


며칠 전 나는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도 나도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라 우리는 만나면 늘 말도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 가상의 세계, 물리법칙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해 내지만, 나는 그 세계 속에 존재하는 사람과 그들의 관계를 그려내고 서사를 풀어가는 반면 친구는 그 세계 자체를 묘사해 내는 것에 더 집중한다. 그래서 내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에 대한 것이 되고, 친구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 세계 자체에 대한 것이 된다. 우리는 이 차이점이 언제나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숨>을 읽으며 나는 그 친구가 상상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어쩌면 테드 창은 내 방식이 아니라 그 친구의 방식대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의 소설들은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세계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해 묘사할 때조차 그것은 결국 소설에서 가정하고 있는 가상의 세계에 대한 설명이 된다. 사람은 단지 그 세계의 일부로서 존재할 뿐인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사고 실험의 장을 제공해 주는 장르'로서의 SF소설이라는 말이 딱 맞다. 그래서 그의 소설들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세계에 대해 써내면서도 테드 창의 단편들에서는 인류애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운명론적이고 어떻게 보면 절망적이기까지 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그의 이야기 속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한번 바라보고 싶다. 내가 보는 세상과 많이 다를 테니까.




*커버: Unsplash의 Natalia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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