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버스트 - A. L. 바라바시

2025년 독서 챌린지, 스물두 번째 책

by 슬로

<버스트>는 내 책장에서 꽤나 오랫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책이다. 사놓고 읽지 않았기 때문인 건 아니다.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최소한 두 번은 이 책을 읽었다. 어린 시절에 나는 A. L. 바라바시의 책 <링크>와 <버스트>를 통해 복잡계나 네트워크 이론 같은 개념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고, 한동안 관련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 읽곤 했다. 어쩌면 이쪽으로 공부를 더 하고 연구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그런 개념들을 '재밌어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버스트>는 잊혔다. 왜 그랬는지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 특별한 계기나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냥 내 흥미를 끄는 또 다른 주제가 나타나서, 내 관심사가 그쪽으로 옮겨 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잊어버렸을 것 같다. 어쩌면 더 재미있는 책들이 나타나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적어도 십 년은 이 책을 꺼내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 갑자기 이 책을 꺼내 읽게 된 것 역시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갑자기 떠올랐을 뿐이다. 최근에 읽은 <휴먼 네트워크>에서 바라바시가 언급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초록색과 파란색이 섞인 책표지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가볍고 재미있고 이미 내가 어느 정도 아는 내용이라 낯설지 않은 비문학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갑자기 <버스트>가 떠올랐고 나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꽂혀 있는 이 책을 오랜만에 빼내서 펼치게 되었다.


놀라운 점은 어린 시절에 그렇게 재밌게 열성적으로 읽었던 책인데도 읽기 전에는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페이지씩 읽어나가면서부터는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들도 있긴 했지만, 처음 읽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들도 많았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이렇게 잊히다니. 그런 생각을 계속 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뜨뜻미지근해지는 것을 넘어 잊히겠구나, 그런 생각에 괜히 서글퍼지기도 했었다. 내 기억력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기도 했고.


그런데 딱 한 가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이 책의 형식이다. 네트워크 과학과 헝가리의 역사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회 현상들과 연구 자료들을 한꺼번에 다루고 있는 아주 독특한 책의 형식만큼은 기억에 깊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가,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재밌어했던' 건 네트워크 이론이나 학술적 개념들이라기보다는 이런 소재들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바라바시의 스토리텔링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한동안 네트워크 과학에 대해 내가 갖고 있었던 관심은 어쩌면 글쓰기 자체에 대한 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라바시라가 들려주는 이야기여서 재밌었던 걸지도. 그는 정말 끝내주는 스토리텔러니까. 아직도 나는 어떤 학문 분야를 그만큼 흥미진진하게 설명하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버스트>를 다 읽고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검색해 보다가 바라바시가 다슌 왕이라는 제자와 함께 2021년에 <과학의 과학>이라는 신작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목부터 마음이 이끌린다. 조만간 그 책도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커버: Unsplash의 Dan Fre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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