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데미안 - 헤르만 헤세

2025년 독서 챌린지, 스물네 번째 책

by 슬로

청소년 필독도서로 한 번쯤 읽어보고 그 이후 까맣게 잊어버린 <데미안>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은 것은 아주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요즘 내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데, 이 시기에 <데미안>을 읽으면 어떤 감상을 느끼게 될지 궁금했다. 어린 시절에 느낀 것과 비슷할까? 아니면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가올까? 그 점을 알고 싶어서 <데미안>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린 시절의 감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도 지금도 나는 싱클레어에 나 자신을 대입하게 된다. 특히 싱클레어가 느끼는 무기력함이나 방황, 예정된 변화 앞에서의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마치 내 것인 양 절박하게 다가왔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시절에는 더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서 <데미안>을 읽으면 감상이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 점 때문에 오히려 불안했다. 그 시절에서 나는 더 성장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예전과 똑같이 늘 생각이 많고 예민하고 쉽게 상처받지만 티 내지 않으려 애쓰다가 속으로 곪아 들어가는 그런 미성숙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걱정이 들어서. 하지만 걱정은 걱정일 뿐. 나는 내가 성숙해졌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까 괜히 이런 걱정들로 나를 스스로 괴롭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을 멈출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예전에 비해 감상이 다른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데미안>을 읽을 때는 외재적인 관점에서의 독해를 전보다 더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는 싱클레어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라고 동일시하며 읽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와 닮아 있는 '싱클레어의 이야기'로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되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사회 분위기나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았을지, 이 책이 출간되던 시절 당시 사람들은 책을 읽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그런 부분을 더 많이 또 더 깊이 생각하며 읽었다는 점이 전과 달랐다. 예전에 비해 세상 경험도 많아지고 생각도 깊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체력이 떨어져서 감정소모를 줄이기 위해 나와 작품을 분리하는 법을 터득한 것일지도.


이번에 새롭게 하게 된 생각들도 있었다. 바로 '데미안은 과연 실재했을까?'라는 생각이다. 데미안이 정말로 단 한 명의 인물로 싱클레어의 삶에 나타났을까? 사실 싱클레어가 '데미안스러운' 주변 인물들을 한데 모아서 만든 가상의 인물상 같은 건 아닐까? 싱클레어의 꿈에 나타난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한 그 존재처럼 데미안도 사실 그런 건 아닐까?


처음 이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은 싱클레어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계속 데미안이 우연히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과 방황하는 청년 시절, 그리고 군 병원의 옆 병상까지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삶에 예언처럼 나타난다. 그래서 데미안이 사실은 싱클레어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표지가 되어 준 인물들의 특징을 섞어서 만들어 낸 상징적인 존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그를 괴롭힘으로부터 구해 준 같은 학교 친구가 있었을 것이고, 우연히 발견한 새와 압락사스에 대한 쪽지를 쓴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여행 중에 어느 도시에서 만난 친구와 그의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고, 입대 후 부상당해 옮겨진 병원에서 옆 병상에 누워 그에게 키스를 해준 환자가 있었을 것이고... 그 서로 다른 각각의 인물들이 싱클레어의 상상 속에서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는 싱클레어 자신의 안에서 그 '데미안'을 발견하고 간직하게 되는 것이고. 진지하게 해석해 본 건 아니고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고전을 다시 읽는 일은 재미있다. 감상이 달라진다면 그 달라진 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재미있고 감상이 비슷하다면 그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전자는 시간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는지을 생각해 보게 되고 후자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기 때문이다. <데미안>을 통해 느끼게 된 나의 본질은 생각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너무 많은 생각 속에 파묻혀 사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데미안>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고야 말았다.



*커버: Unsplash의 Toan 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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