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독서 챌린지, 스물여섯 번째 책
<붉은 웃음>은 소설 이전에 연극을 통해 먼저 접한 작품이다. 연극을 본 게 작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러일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원작소설의 이야기에 청년고독사라는 소재를 추가해 각색한 1인극이었다. 그 연극을 인상 깊게 봤기 때문에 원작소설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후로 벌써 1년 가까이 지나버렸다. 변명하자면 그 연극이 워낙 감정소모가 큰 내용이라 보는 내내 심리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원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을 잘 보지 못한다. 전쟁에 대한 조금 강박적인 공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붉은 웃음>을 읽는 것도 계속 미루게 됐던 거다.
그러다 정말 갑자기 이 책을 이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그렇듯 특별한 계기 같은 건 없었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잘 살다가 갑자기 문득 '붉은 웃음이야.'라는 대사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그 대사가 떠올랐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금세 까먹은 걸 보면 뭔가 아주 사소한 계기였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제 <붉은 웃음>을 읽을 때가 됐다는 걸 깨달았고 곧장 책을 집어 들었다.
연극을 보는 것만큼이나 책을 읽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강렬하고 끔찍하고 괴로운 글이었다. 힘들어서 잠깐 쉬었다가 읽고 싶으면서도 묘사가 너무 강렬해서 계속해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싶기도 했다. 빨리 이야기의 끝을 보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좀 있었던 것 같고. 그러다 결국 백 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을 이틀 만에 다 읽고야 말았다. 책을 펴는 데에는 일 년이 걸렸지만 읽는 건 이틀이면 충분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전해 듣기만 한 세대는 생각하는 방식부터 다르다는 얘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다. <붉은 웃음>을 읽으며 그 말이 떠올랐다. 나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다. 그래서일까, 참전군인인 형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1부보다 그런 형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쟁을 접하는 동생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2부가 더 감정적으로 가깝게 다가왔다. 동생이 느끼는 원인 모를 혼란과 두려움이 낯설지 않았다. 형을 미치게 만든 광기와 공포가 전쟁터가 아닌 곳, 군인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퍼져 나가는 묘사가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동생이 평화로운 도시의 하늘을 보며 '사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닐까?'라고 상상하는 부분도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나도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끔찍한 일들이 사실 다 내 꿈이거나 망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형이 그랬던 것처럼, 또 동생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들판에서 붉은 웃음을 보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더 이상은 붉은 웃음이 나타나지 않기를.
*커버: Unsplash의 Johannes Plen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