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독서 챌린지, 스물일곱 번째 책
한때 루미의 시에 푹 빠져서 한국어로 번역된 루미 관련 책이라면 모조리 사들였던 적이 있다. <루미 평전>도 그때 처음 접했던 책이다. 루미의 시를 더 잘 이해하려면 그의 생애와 시의 특징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 책을 어렵고 지루하다고 느꼈다. 아직 루미의 시를 지금만큼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루미 평전>은 이미 독자가 루미의 시를 많이 읽어보았고, 딱히 설명을 자세하게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쓰인 책이라고 느껴진다. 그래서 당시에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루미의 시를 더 많이 읽고 난 지금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아졌다. 그래서 전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루미 평전>과는 별개로, 요즘 루미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그런 것 같다. 첫째로 루미처럼 열렬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의 시에 드러난 희생적이고 자기소멸적인 사랑을 온전이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타적인 사랑은 물론 좋은 거지만 때때로 루미가 말하는 사랑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둘째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서인지 루미의 시에 드러나는 종교적인 색채, 특히 인격적인 신 같은 개념이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는다. 괴로움이 있어야 우리가 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신이 삶을 괴롭게 만들었다는 것도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마음으로 100%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아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 종교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루미의 시에서 사랑과 종교를 빼면 뭐가 남는가? 나는 그럼 루미의 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이런 고민을 해본 적도 있다. 가장 중요한 지점을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는데 그러면 나는 왜 루미의 시에 감동을 받는 것일까? 고민 끝에 나는 내가 루미의 시를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 중 가장 드라마틱한 건 나 자신과의 관계이다. 내가 가장 끔찍하게 미워하는 것도 나 자신이고, 지나칠 정도로 사랑하는 것도 나 자신이고, 가장 많이 싸우고 갈등하고 화해하고 지지고 볶는 것도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스스로와의 투쟁 상태에 있기 때문에 나는 루미의 시를 나와 나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어쩌면 앞으로 뭔가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다른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떤 영적인 경험을 하게 되거나 신앙심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아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루미를 이해하는 방식이 또 달라지지 않을까. 원래 문학을 감상할 때는 나 자신이 투영되니까.
*커버: Unsplash의 Luke Por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