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이성복 아포리즘

2025년 독서 챌린지, 스물여덟 번째 책

by 슬로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여담으로 글을 시작해야겠다. 브런치는 제목 글자수 30자 제한이 있다. 그래서 책 제목이 길거나, 부제가 달려 있거나, 작가의 이름이 길면 제목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된다. 이 책도 그런 케이스였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이걸 어떻게 다 쓸 것인가. 게다가 이 책은 제목과 부제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되어 있기까지 하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이성복 아포리즘>인지 <이성복 아포리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인지 아직도 확신이 없다. '이성복 아포리즘'이라고 제목에 쓴 건 단지 이렇게 쓰는 게 더 짧아서다.


게다가 한 가지 고민이 더 있다. 책 제목에 저자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된다. 원래 책을 다 읽고 브런치에 기록을 남길 때 '책 제목 - 저자' 형식으로 제목을 쓰는데, '이성복 아포리즘 - 이성복' 이렇게 쓰는 건 왠지 거슬린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 - 윌리엄 셰익스피어'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는 두 케이스 모두 저자명을 빼고 '이성복 아포리즘',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과 같이 책 제목만 적기로 결정했다. 간단히 기록을 남길 때조차도 이런 사소한 형식적 고민을 하게 된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독자를 위해서 쓰는 것도 아니고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자유롭게 써도 상관없는데 말이다. '자유의 극단은 형식의 창조'라는 책 속 문구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이성복 아포리즘>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시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는 거였다. 시를 통해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예를 들면 <이성복 아포리즘>에서 시인은 행동이나 사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하는 듯한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적는다. 죽음과 절망, 고통 같은 일반적으로는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개념들을 긍정하고, 때로는 심지어 동경하는 듯한 뉘앙스를 비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있어서 삶과 영원이 존재한다는 식이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관점들은 루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시인이 루미나 다른 사상가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을지, 아니면 단지 비슷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지, 혹시 시 쓰는 것에 대해 오래 고민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일지 궁금했다.


또 시인은 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데, 오직 비유와 상징으로서의 신만이 존재하고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신은 부재하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는 루미와 완전히 다르기도 하다. 루미의 시가 대단히 종교적인 반면 이성복 시인의 문장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이 신에 대해 거듭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시작(作, 시를 지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나, 그래서 창조와 신에 대한 비유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성복 아포리즘>에서 또 한 가지 재미있었던 부분이 있다. 바로 앞에서 나온 말이 뒤에서 거의 비슷한 표현과 내용으로 다시 등장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다. 검사의 신뢰성을 위해서 비슷한 질문들을 여러 번 배치하는 심리 검사처럼, <이성복 아포리즘>에서 반복되는 내용들은 시인의 진심을 드러내 주는 것 같았다. 단순히 한순간 문득 떠오른 문장들이 아니라, 시인이 꾸준히 생각하고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던 신념과 사상이었기에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비슷한 문장을 적을 수 있었던 게 아닐지.


책을 다 읽고 원래 자리에 돌려놓으며, 나란히 꽂혀 있는 이성복 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을 비롯한 시집들을 훑어보았다. 언젠가 저 시집들을 다시 집어들 날이 올 것이다. 지금 다시 읽는다면 처음 읽었을 때와 어떻게 감상이 다를까? 또 어떻게 같을까?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어떤 낯익은 것을 찾게 될까? 실제로 시집을 다시 읽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커버: Unsplash의 N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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