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의 문장들

독서 챌린지 기록 #11

by 슬로

책을 읽는 것과 그날 읽은 분량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장 하나를 고르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일이다. 때로는 책의 내용만 흘러들어오고 기억에 남는 문장은 없을 때도 있다. 때로는 마음에 박히는 문장이 여러 개라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한참 고민하기도 한다. 때로는 기록할 문장을 신경 쓰면서 읽느라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한다. 공들여 고르려다가 지쳐서 그냥 생각나는 부분 중 하나를 적당히 택할 때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 문장들이 하루에 읽는 수십 페이지 속에서 내가 선택한 작은 한 부분이라는 사실은 동일하다. 이번 달에 독서를 하는 동안 매일 하나씩 총 30개의 문장이 아래에 기록될 것이다. 과연 어떤 문장들을 고르게 될까.


*커버: Unsplash의 Alfiano Sutianto




11월 1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나는 개입니다. 인간인 당신들은 나만큼 이성적인 피조물이 아니므로 어떻게 개가 말을 하느냐고 하겠지요. 그러면서도 시체가 말을 하고, 주인공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써 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믿는 눈치더군요. 하지만 개도 말을 한답니다. 단지 우리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할 뿐이죠.


11월 2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한때 나는 이곳에서, 책과 연필과 그림들 속에서 지극히 행복했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 그만 이 '천국'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11월 3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그림이 전설이나 이야기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책으로는 절대 걸맞지 않은 무엇, 그러니까 현실 그 자체를 그리고 있음을 느꼈고, 그걸 감지한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11월 4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11월 5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그날 밤 이후로 "나는 내가 아니다. 나라고 했던 사람은 항상 너였다."라는 시행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11월 6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이 죽음의 눈동자를 보아라. 인간은 궁극적으로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더냐. 이 그림을 보면서 그림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써라. 죽음에 목소리를 주어라. 자, 종이와 필통이 여기 있다."


11월 7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베네치아인은 베네치아인처럼 죽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죽음은 서로 닮았네."


11월 8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세밀화가나 우리 같은 신의 비천한 종들의 진실은 솜씨와 완벽함이 잘 표현되는 때가 아니라, 반대로 말이 잘못 나오거나 실수를 저지르거나 속이 상하고 상처를 입는 순간에 표현된다.


11월 9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나는 너무나 두려워 울부짖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의 비명 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초록색으로 칠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둠에 잠긴 텅 빈 골목에서는 아무도 이 색을 듣고 있지 않으며, 내가 정말로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1월 10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나는 눈물을 흘릴 때면 나 자신으로부터 떠나 다른 사람이 돼 버리곤 합니다. 책 속의 슬픈 그림을 보며 슬퍼하는 독자처럼, 내 삶을 밖에서 들여다보며 내가 불쌍하다고 여기지요.


11월 11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저를 본 사람들은 다들 "어머나, 정말 아름다운 말이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실상 제가 아니라 저를 그린 화가를 칭찬하고 있는 겁니다. 말들이 모두 서로 다르게 생겼다는 건 화가가 우선적으로 알아 둬야 할 사항입니다.


11월 12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그렇다면 모든 것, 이 모든 것...... 이 세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비밀이다."라는 말을 내면으로 느꼈다. 어쩌면 "사랑하라."라고 말한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쪽도 확신은 없다.


11월 13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그렇다, 나는 두려웠다. 그럼에도 나는 밖에, 추위 속에, 거리에, 말들과 개들과 나무들과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좋았다.


11월 14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작고한 에니시테는 어떤 결함이 재능이 없거나 기예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화가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온 거라면, 그것은 이미 결함이 아니라 개성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11월 15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멋진 말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바로 그 말이 된다.


11월 16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인간이 그 그림자까지 낱낱이 그려져야 할 정도로 중요한 피조물입니까? 어느 골목길에 있는 집들이 인간의 눈이 가진 미천한 지각 능력 탓에 갈수록 작아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면 세상의 중심에 신이 아니라 인간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 아닙니까?


11월 17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몇 세기 동안 수천 명의 세밀화가가 똑같은 그림을 은밀하게, 서서히 그림으로써 역시 은밀히, 서서히 변하는 세상을 반영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네."


11월 18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후에, 우리가 그린 세밀화를 통해 우리의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11월 19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장인 세밀화가가 새로운 화풍을 채용해야만 했다고 하더라도, 단지 그림의 구석구석에 약간만 사용하는 데 그쳤다면 어느 정도는 옛 화원과 장인의 화풍을 고수할 수 있지 않았을까?


11월 20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펜으로 일을 한 그 많은 세월 동안, 내게 마음의 평안과 균형(걷는 균형조차)을 준 건 뜻밖에도 손잡이가 상아로 된 이 검이었다. 책은 우리의 슬픔에 스스로 위안이라고 착각하는 깊이를 더해 줄 뿐이다.


11월 21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세밀화가가 나이가 들어 비흐자드와 같은 반열에 오른다고 해도 그가 보는 것은 단지 눈을 즐겁게 하고 영혼에 만족과 흥분을 가져다줄 뿐이지. 기예를 발전시켜 주지는 않아. 왜냐하면 그림은 눈이 아니라 손으로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지."


11월 22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그 슬픈 시선에는 모든 도제들이 아는, 오직 한 가지 의미가 있다. 즉 환상을 꿈꾸지 않으면 시간은 결코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11월 23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그들은 마치 내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 가고 있는 방향에 분노하고, 이 때문에 모든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 했다.


11월 24일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마치 밤에 집들의 문이 닫히고 도시가 어둠 속에 방치되는 것처럼, 그림도 고아로 버려졌습니다. 세상이 한때는 아주 다른 식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무자비하게 잊히고 말았죠.


11월 25일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 장대익

과학을 테크닉, 도구, 실용으로만 여기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인간을 달에 보내 주는 것이 과학이긴 하지만, 인간이 왜 이런 존재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과학이다. 과학은 인간의 조건과 문명을 송두리째 바꾼 가장 큰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 자체를 혁명적으로 바꾼 가장 중요한 힘이기도 하다.


11월 26일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 장대익

열정은 호기심을 활활 타게 만드는 장작과도 같다. 호기심과는 달리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일생을 통해 배우고 익혀야 하는 일종의 태도이다.


11월 27일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 장대익

사실 인간은 참 희한한 동물이다. 자기가 만든 말들(표어·비전·광고·이념 등)에 감동하고 변화되며,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까지 한다. (중략) 내가 아는 한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이런 '이상한' 짓은 하지 않는다.


11월 28일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 장대익

오직 인간만이 유전자에 대항하는 밈을 가지고 있고 밈의 힘에 의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존재이다.


11월 29일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 장대익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내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도덕관념의 시작이다. (중략) 직접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신경은 계속 켜져 있는 것이고, 이것은 우리 모두가 신경적으로 네트워킹 되어 있다는 징표이다.


11월 30일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 장대익

하지만 다윈은 이런 '생명의 줄 세우기'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사다리 대신에 나무를 택했다. 그의 '생명의 나무'에서는 지렁이건 장미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여러 가지들이다. 그리고 인간도 현재 살아 있는 수많은 잔가지들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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