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2025년 독서 챌린지, 서른 번째 책

by 슬로

명작이 명작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면서 몇 번씩이나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구나 제목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워낙 유명한 책이기 때문에 읽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는데도 기대한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좋은 책을 만나면 결말까지 빨리 다 읽어버리고 싶으면서도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서 책장을 넘기기를 망설이게 되기도 하는데 <내 이름은 빨강>을 읽을 때가 딱 그랬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흥미로웠냐고 묻는다면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측면은 이야기의 내용이었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첫 장에서부터 이미 살인 사건이 일어난 상태에서 시작하고, 이야기 속 인물들이 하나씩 소개되면서 그들 중 누가 살인자인지를 독자들이 계속 추리해 가며 읽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이야기 속에 들어가서 미스터리를 풀어 가는 탐정이 되는 기분이다. 책이 내게 '이 사람이 범인이야!'라고 말해 주기 전에 내가 범인이 누구인지를 맞추고 싶어진다. 빨리 마지막 장까지 가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싶으면서도 최대한 그 순간을 늦추면서 이야기가 주는 긴장감을 즐기고 싶기도 하다. 책이 짧지도 않았고 다소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설명이 많은데도 이런 흥미진진한 내용 덕분에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두 번째 측면은 이야기의 형식이었다. <내 이름은 빨강>은 아주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매 챕터마다 화자가 달라지고 그 화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직접 '독자'에게 말을 건네며 이야기를 풀어 가는 식이다. 심지어는 커피숍의 이야기꾼의 입을 빌어서 개, 말, 나무, 빨간색 같은 화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형식 자체가 이야기를 한층 더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이야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이름은 빨강>은 바로 그 지점에서 정말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 측면은 이야기의 의미였다. 지난번에 읽은 <하얀 성>도 그렇고 <내 이름은 빨강>도 그렇고 오르한 파묵의 책들은 동양과 서양의 대비를 탐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내 이름은 빨강>은 그림의 화풍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동양과 서양의 관점 차이와 문명의 충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시각이 정말 흥미로웠다. 특히 동서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투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아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두 문명을 바라보는데, 그 시각에 가치 판단이 없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이야기는 원근법을 비롯한 서양의 화풍이 동양의 세밀화가들에게 준 충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서양 문물에 대한 열등감도, 동양 문물에 대한 우월감도 보이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은 그저 문화가 다르고, 그 서로 다른 문화 때문에 다르게 발전하며, 이 다르게 발전된 양상은 서로에게 영향을 줄 뿐이다. 이렇게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더 '좋은지'를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차이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내가 책을 100%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거였다. 물론 이건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나는 튀르키예 사람이 아니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책에서 묘사하는 세밀화가나 그들의 일상을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 '에펜디' '디리헴' '악체' 등 등장하는 용어 자체도 낯설고 그 시대의 미술 양식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다. '선조 치세'라고 하면 대강 임진왜란 때겠거니 하는 감각이 있는데, '무라트 3세' 시절의 튀르키예가 어땠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체르케스인, 아바자인, 에르메니아인이라는 설명이 있을 때 거기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도 도통 알 수가 없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 이해할 필요도 없이 바로 알 수 있는 것들을 나는 엿보는 게 고작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속상했다.


어쩌면 튀르키예에 사는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은 번역기 없이 한국어 가사들을 알아듣고 숨은 뉘앙스까지 별다른 노력 없이 파악할 수 있는 나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내가 오르한 파묵의 책들을 번역기 없이 읽을 수 있는 그들을 부러워하듯이 말이다. 조만간 또 오르한 파묵의 다른 작품을 읽게 될 것 같다. 그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아마 또다시 튀르키예인들을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다음번에 읽을 책은 또 어떤 이야기일지 기대된다. <내 이름은 빨강>은 나를 16세기 이스탄불로 데려다 놓았는데 그 책은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 것인가?




*커버: Unsplash의 ali she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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