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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05. 2023

[D-330] 이별할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일

36번째 글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다. 아주 어릴 때 학교에서 과학 특별교육을 받을 때 나누어 줬던 올챙이를 제외하면 정말로 한 번도 없다. 물론,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자고 떼를 쓰는 편이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아주 엄격한 원칙이 있었다. 매일매일 반려동물과 함께하며 모든 것을 다 책임지지 못할 거면 절대로 새 생명체를 데리고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책임'에는 밥이나 산책, 배변 같은 일상적인 것만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엔 나중에 시간이 지나 반려동물이 나이가 들고 아파서 하루종일 곁에서 케어가 필요하게 되면 그렇게 해 줄 수 있겠냐는 것, 그리고 늙고 아픈 반려동물을 지켜보는 것을, 또 언젠가 이별하게 될 것을 견딜 수 있겠냐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반려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키우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별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끝이 정해져 있는 관계는 애초에 시작하고 싶지도 않다. 반려동물처럼 보통 길어야 15년을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를 시작할 용기가 내게는 없다.


그런데 나는 비겁하게도 강아지나 고양이나 다른 동물들을 보는 것은 좋아한다. 잠시 산책을 다닐 때도 일부러 강아지들이 많이 산책하는 쪽으로 걷고 TV동물농장처럼 동물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도 자주 본다. 지나가다가 고양이와 마주치면 행복하다. 가로수에 앉은 참새나 박새를 보는 것도 즐겁다. 그리고 친구 집이나 친척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만나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


오늘 오후에 잠시 고모 댁에 다녀왔다. 전해 드릴 것도 있었고 보고 싶은 강아지도 있어서. 고모는 강아지를 한 마리 기르시는데, 이 강아지와 나는 상당히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고모와 고모부가 여행이나 출장 때문에 집을 비우실 때 가끔씩 우리 집에서 강아지를 맡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강아지에게 우리 집은 일종의 별장 같은 것이 되었고, 우리 가족에게 이 강아지는 절반의 가족이 되었다. 우리 집 개는 아니지만 함께 사는 일이 종종 있는 가족. 내가 사랑하는 가족.


이 강아지의 이름은 '예돌이'다. 너무 예뻐서 이름도 예돌이다. 예돌이는 이름값을 하는 강아지다. 정말 예쁘고 착하고 천사 같다. 3kg의 작은 천사. 예돌이가 처음으로 우리 집에 온 것은 9년 전이었다. 그때 예돌이는 4살이었다. 지금 예돌이는 13살이다. 나이가 들어서 전보다 많이 약해졌고 건강도 나빠졌다. 그래도 얼마 전에 봤을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오늘 오랜만에 다시 본 예돌이는 노견 같은 티가 났다. 워낙 작고 아기 같아서 전에는 예돌이가 나이가 많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예돌이가 정말로 할아버지가 다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귀도 잘 들리지 않고 걸음은 아주 느려졌다. 듣자 하니 건강도 아주 안 좋아져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도 먹고 있고 일주일에 세 번씩 주사도 맞는다고 한다. 밥도 잘 먹지 않아서 뭐라도 먹이려고 애를 쓰고 계신다고. 올해를 넘길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말까지 듣자 덜컥 겁이 났다. 어쩌면 오늘이 예돌이를 보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재작년쯤, 예돌이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무서웠다. 이미 오랫동안 함께해 온 가족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이렇게 잃어버리고 나면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 남겨진 슬픔을 견뎌야 할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래서 그때 나는 예돌이를 사랑한 것을 후회했다. 우리 집 개가 아닌데도 정을 주고 사랑하고 가족처럼 여겼던 것을 후회했다. 함부로 애정을 퍼부은 것을 후회했다. 이제 더 이상은 마음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이제 그 단계는 넘어섰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 멈춰 버리거나 사랑하기를 그만둬 버리는 짓을 하기보다는,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더 많이 사랑하기로 했다. 그게 예돌이에게도 좋은 일인 것 같았다. 강아지는 사람이 슬퍼하면 다 알아챈다고 하지 않나. 예돌이도 내가 슬퍼하거나 외면해 버리면 다 눈치를 챌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나는 예돌이와의 이별을 생각하며 슬퍼하기보다는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주기로 했다. 비록 우리 집 개는 아니지만 자주 만났고 나와 함께 살기도 했던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니까.


반려동물과 함께하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정말 용기 있는 일이다. 수명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는 대상을, 끝이 정해져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별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일은 얼마나 용감한 일인지. 내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용기를 내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아주 겁이 많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 용기의 1% 정도만이라도 예돌이를 위해 낼 작정이다. 예돌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지금 예돌이와의 순간에 충실하고 후회 없이 예돌이를 보내 주기 위해서 나는 예돌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퍼부어 줄 것이다.


오늘 나는 예돌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주고, 예돌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귀 뒤와 이마를 쓰다듬어 주고, 예돌이가 조르는 대로 안아 올려서 내 무릎에 올려놔 주었다. 예돌이는 내 무릎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낮잠을 잤다. 강아지의 온기가 따끈따끈하게 무릎을 덥혀 주는 기분. 예돌이의 보드라운 털이 내 손에 감기는 기분. 토독토독거리는 발자국 소리. 나를 올려다보는 다정한 눈빛과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꼬리. 이 모든 것들을 오늘 나는 마음 속에 담아 두었다. 아직도 겁이 나고 아직도 이별이 두렵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상관없다. 예돌이를 떠나보낼 미래는 중요하지 않다. 예돌이와 함께하는 바로 그 순간만이 중요하다. 나는 그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으니까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랑을 주고 싶다.



/

2023년 2월 5일,

소파에 앉아서 TV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Petr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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