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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04. 2023

[D-331]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35번째 글

나도 내 마음을 모른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아주 어이없는 일이다. 내 마음인데, 내가 모르면 대체 누가 안단 말인가?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일은 꽤 자주 일어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내가 알지 못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다. 피곤한 데다가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모임 약속이 있어서 취소하고 싶기도 하고, 그래도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면 즐거울 테니 약속에 나가고 싶기도 한 경우. 이런 경우에는 약속을 취소할지 말지를 정하느라 내적으로 한참을 갈팡질팡하게 된다. 둘 다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두 갈래의 선택지를 고르고 싶은 마음이 50% 씩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를 수 있다.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만 알면 된다. 어떤 쪽이 60% 정도로 끌리는지, 또는 어떤 쪽이 50.1% 정도로 끌리는지라도 알면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쪽이 50.1% 인지 내가 스스로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가 고민해서 결국 답을 알아낸다고 해도, 긴 갈등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이럴 때 아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동전던지기다.


동전던지기로 선택을 하라니, 얼핏 너무 무성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동전던지기의 진짜 효과는 동전이 나 대신 선택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내 반응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전 앞면이 나오면 약속에 가고, 뒷면이 나오면 약속을 취소하는 것으로 정한 뒤 동전을 던져 뒷면이 나왔다고 하자. 그때 내가 순간적으로 "아!" 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면 내 마음의 50.1%는 약속에 나가고 싶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제 그냥 군말 없이 약속에 갈 준비를 하면 되는 거다. 동전던지기는 이렇게 내 마음을 알려 주는 도구 역할을 한다. 실제로 동전이 앞면이 나왔는지, 뒷면이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요즘은 동전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현금도 거의 갖고 다니지 않는데, 동전은 더더욱 들고 다니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현대의 동전던지기로 핸드폰의 스톱워치 기능을 사용한다. 스톱워치의 시작 버튼을 누른 뒤, 눈을 감고 STOP 버튼을 클릭하는 방식이다. 동전의 앞뒷면은 스톱워치의 마지막 숫자가 짝수가 나오는지 홀수가 나오는지로 판별한다. 예를 들어 내가 다음 주에 휴가를 내고 싶은데 그럴지 말지 고민된다면 스톱워치를 켜서 마지막 숫자가 짝수가 나오면 휴가를 가기로, 홀수가 나오면 휴가를 가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정확히 아는 일은 정말 어렵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도 물론 어렵지만, 내 마음은 나의 것이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 나름대로 추측하고, 그 추측이 정답이라고 혼자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렇게 추측으로 끝낼 수가 없다. 내 마음, 내 생각,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챙겨서 잘 가지고 나가야 하는 것. 내 마음의 방향을 알려 주는 나침반이 바로 내 마음속에 있다. 그래서 평소에 나 자신의 내면을 자주 들여다보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를 잘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동전이나 스톱워치는 이 '들여다보기'를 좀 더 빠르게 해 줄 수 있는 도구이다. 언젠가는 이 도구가 없이도 나 자신의 내면을 투명한 물속을 들여다보듯이 명확하게 알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전까지는 뭐, 가끔씩 스톱워치를 켜는 수밖에.



/

2023년 2월 4일,

지하철에 앉아서 여러 소음들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Pok Ri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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