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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06. 2023

[D-329]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

37번째 글

오늘 CGV가 아카데미 기획전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후보로 오른 작품들을 영화관에서 상영한다고 한다. 아직 한국 개봉을 하지 않은 <타르>나 <이니셰린의 밴시> 같은 작품들을 너무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영화관에서 볼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매년 이맘때쯤 되면 아카데미 기획전 덕분에 늘 기쁜 것 같다.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영화관에서 볼 수 있어서.


사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요새는 그냥 집에서 봐도 된다. 넷플릭스 같은 OTT도 있고, VOD로 사서 보거나 DVD를 사서 봐도 되니까. 4K 모니터나 빔프로젝터가 있다면 큰 화면으로 고화질 영상을 즐기는 홈 시어터를 마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아직 안 본 영화를 처음 보는 경우나, 내가 기대하고 있던 영화인 경우엔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 언젠가 재개봉을 할 때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보고 싶어서 아직 안 보고 묵혀 둔 영화들도 몇 개 있을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렇게 느껴진다. 집에서 노트북이나 태블릿,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는 것은 관람이나 감상이 아니라 '관찰'이라고. 그냥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반면에 영화관에 가는 것은 '경험'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 외출을 준비하고 집을 나서서 티켓을 들고 어두운 상영관으로 걸어 들어가 내 자리를 찾아 앉고 광고 몇 개를 보다가 불이 꺼지면 약 2시간 동안 집중해서 스크린에 빠져들고 다시 불이 켜지면 여운에 잠긴 채 걸어 나오는 이 경험 전체를 나는 너무너무 좋아한다. 이렇게 영화를 보는 것과 그냥 핸드폰으로 넷플릭스를 틀어 놓는 것은 정말 천지 차이다.


내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집중력 때문이다. 영화관에 가면 불이 꺼진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시야는 온통 새까매지고 오직 스크린만이 빛난다. 나는 의자에 갇힌 채 꼼짝없이 2시간 동안 틀어 주는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수밖에 없다. 일시정지도 없고 뒤로가기도 없고 1.5배속도 없고 중간에 끌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훨씬 더 몰입해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고,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가 있다. 나 자신을 잊은 채 휘몰아치는 영화 속에 온전히 잠겨 있다가 나올 수 있다. 대중교통에서 이어폰을 꽂고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보는 경험이 10의 감상을 남긴다면 영화관에서는 이 감상이 100으로 극대화되는 것이다.


물론, OTT를 통해 작은 화면에서 보는 것이 더 적절한 경험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나이브스 아웃 2: 글래스 어니언> 같은 영화가 그랬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이 영화는 OTT로 영화를 보는 현대인의 특성을 아주 영리하게 이용했다. 사람들이 주로 모바일 기기의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본다는 점, 또 상대적으로 집중력과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점, 1.5배속으로 보거나 10초씩 앞으로 넘기면서 보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을 이용해서 이 영화는 관객을 훌륭하게 속여낸다. 그래서 화면 곳곳에 대놓고 단서들을 드러내 놓았으면서도 의도적으로 관객들이 그 단서를 놓치게 만든다. 만약 이 영화가 넷플릭스 개봉이 아니었고 극장에서 상영되었다면 관객들은 분명 이런 단서를 잡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넷플릭스 영화이기 때문에 이런 트릭들을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은 내게 더 많은 것들을 남긴다. 만약 내가 <아이리시맨>을 집에서 노트북으로 봤다면 아마 1시간 정도 보다가 일시정지하고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물을 마시러 가거나 다른 일을 하러 갔을 것이다. 보다가 말다가 하면서 며칠에 걸쳐서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이리시맨>을 예술영화관에서 봤고, 3시간 29분이나 되는 상영시간 내내 어두운 영화관에서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서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만약 이 영화를 그냥 넷플릭스로 봤다면 영화관에서 봤을 때만큼의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일을 정말 사랑한다. 그래서 OTT의 영향으로 영화관이 점차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하고 슬프다. 영화 티켓 가격이 점점 올라가는 것도 서럽다. 예전에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아무 영화나 예매해서 보고, 뜻밖에 좋은 영화를 만나는 경험이나 내가 평소에 즐겨 보지 않는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영화관에 가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이미 구독하고 있는 넷플릭스/왓챠/티빙/디즈니플러스 등으로 볼 수도 있는데 굳이 영화관까지 가야 하는지를, 또 내가 낸 비싼 티켓값만큼의 가치를 이 영화가 내게 줄 수 있을 것인지를 자꾸만 재 보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웬만하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더 선호하기는 한다. 하지만 예전만큼 자주, 별다른 고민 없이 영화를 보러 가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 점이 개인적으로 아주 속상하다.


적어도 내가 죽을 때까지는 영화관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특별한 경험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2023년 2월 6일,

TV 앞에 앉아서 영화채널에서 틀어주는 영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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