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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07. 2023

[D-328] 시간이 더 필요해요

38번째 글

지난주에 만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지금 네가 가장 원하는 게 뭐야?" 나는 곧장 '시간'이라고 대답했다. 내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미리 준비했던 대답도 아니었고 평소에 내가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생각해 봤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 대답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어." 그 대답을 하면서 나는 내가 시간을 정말로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럴 법도 하다. 요즘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으니까. 내 하루 일과는 대략 이렇다. 6시 30분~7시 정도에 일어나서 간단히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회사까지는 1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 그리고 회사에서 대략 10시간 정도를 머무른다. 일하는 시간 8시간과 점심, 저녁을 먹는 시간을 각각 1시간씩 해서 총 10시간. 그러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데에 또 1시간이 좀 넘게 걸리고, 집에 오면 벌써 8시 30분 정도가 된다. 나는 씻고 앉아서 다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쓴다. 매일 한 편씩 에세이를 써서 올리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으니까 빼먹을 수 없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이제 자기 전까지 시간이 별로 없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다른 글을 쓰거나, 게임이나 퍼즐, 비즈 같은 취미 활동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또 글을 쓰는 것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나는 이미 지쳐 있다. 어서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평일에는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 이것저것 하고 싶어서 빡빡하게 계획을 짜 두는데, 그렇기 때문에 주말에도 늘 시간이 부족하다.


물론 더 일찍 퇴근하는 날도 있고 가끔씩 재택근무를 하기도 한다. 재택근무를 하면 이 하루 일과에서 출퇴근에 걸리는 2시간 정도가 빠지지만 그래도 시간이 충분치는 않다. 또 보통 일이 바쁠 때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을 아끼고 싶어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시간에 쫓기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언제나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왔다. 내 평생을. 아직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길이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 인생 내내 나는 시간이 부족해서 허덕였다.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좋아하는 것도 너무 많고 해야 하는 것도 너무 많아서 늘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전과 달리 내가 해야 하는 일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잠을 포기하지 않기로 정했기 때문에 더 시간이 없다. 남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계획도 세우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려고 애를 쓰지만 쉽지만은 않다. 그리고 아무리 계획한 대로 잘 쓴다고 해도 늘 시간은 부족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나를 쫓지 않고 나와 손을 잡고 걸어가 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와 시간의 관계는 한 번도 그런 식이었던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 같고.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CAAMP라는 포크 밴드의 노래 'Feels Like Home'을 계속 떠올렸다. 더 정확하게는 이 노래의 후렴구를. 


I need time. Give me time.
내게는 시간이 필요해요. 내게 시간을 줘요.

- Feels Like Home 중에서.


아주 걸걸한 목소리로 시간이 필요하다고 울음을 내뱉는 듯한 이 노래의 후렴 부분은 아주 중독성이 있다. 내가 진심으로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원래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현재를 충만하게 살겠다는 결심에 대한 노래라지만, 이 절절한 후렴구 때문에 이 노래는 내게 시간에 대한 노래로 더 깊이 각인되어 있다. 나는 정말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직 어떻게 해야 시간을 더 얻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쫓기지 않을 수 있을지는 깨닫지 못했다. 언젠가 그런 깨달음이 찾아오리라는 확신도 없고.


하지만 별 수 없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자비가 없으니까, 일단 나도 엉거주춤 달릴 수밖에. "I need time, give me time."이라고 끝도 없이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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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7일,

TV 앞에 앉아서 유튜브로 'Feels Like Home'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annc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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