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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08. 2023

[D-327] 일상적으로 '죽음'을 입에 올리지 않기

39번째 글

"죽겠어요." "죽겠다." "죽을 것 같아."


이런 말들은 아주 상황이 안 좋을 때도 사용되지만 반대로 아주 기쁜 일,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고 흥분되는 일에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영화의 속편 소식이 10년 만에 들려오는 경우. 이런 경우 좋은 것도 좋은 거지만 일단 너무 믿기지 않고 어안이 벙벙하다. 그리고 영화가 제작되길 기다리고, 어떤 작품이 될지 기대하고, 개봉 후 예매하고 보러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너무 떨려 온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와, 죽을 것 같다."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또는 좋아하는 밴드의 내한 공연이 발표되었을 때. 지금까지 유튜브 영상으로만 봤던 바로 그 밴드의 음악을 라이브로 듣는다는 상상을 하면 마치 '죽을 것 같이' 벅차오른다. 그리고 동시에 걱정이 밀려온다. 티켓팅을 했는데 내 티켓을 구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매일같이 예매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마음을 졸일까 봐, 결국 공연을 보지 못하고 밖에서 눈물만 흘리게 될까 봐 걱정되고 불안해져서 자연스레 "죽겠네…." 라는 말을 뱉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표현을 의도적으로 안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죽음을 일상적으로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아서다. 특히 이 표현이 긍정적인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는 더더욱.


어쩌면 매우 기쁜 상황에서 이런 죽음과 관련된 표현, 또는 '와, 뭐라도 부수고 싶다'와 같이 폭력과 관련된 표현들을 쓰게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기쁘면 심박수도 올라가고 숨도 가빠지고 여러모로 몸에 무리가 가니까, 이 흥분을 빠르게 가라앉히기 위해서 일부러 우리의 뇌가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감정들을 끌어오는 것일지도. 그래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서 불의의 사고를 겪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생겨난 우리의 심리적 기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죽음과 폭력에 대한 표현이 일상화되면 습관처럼 이런 표현들을 사용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까지 기쁜 일이 아닌데도, 부정적인 생각까지 해 가면서 진정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닌데도 이런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 나는 말에는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들으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게 된다. 반면 부정적인 말을 듣고 말하는 것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가져온다. 과학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감정 면에서는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나 스스로 하는 혼잣말이더라도, 아니면 그냥 머릿속으로만 떠올리는 생각이더라도, 부정적인 표현들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해 내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는 내 말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쁜 일이 있다면 그저 순수하게 기뻐하고 싶다. 가장 기쁜 그 순간에 죽음이나 폭력을 입에 올리고 싶지는 않다. 기쁘면 기쁘다고, 그냥 그렇게 말하려고 하고 있다. "아, 죽겠다"나 "미친 거 아니야?" "벽이라도 부수고 싶다!" 같은 과격한 표현들 대신에, 그냥 내가 얼마나 기쁜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 중이다.



/

2023년 2월 8일,

버스에 앉아서 기사님이 틀어 놓으신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StarzySpringe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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